[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3. 끝없는 편력 <12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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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언제 왔어?

멋없이 그의 아내가 하는 소리다.

-수고 많네. 그냥 놔두고 애기나 받어.

아낙네가 아기를 받아 안고 대위는 그녀가 끌고 들어온 리어카에서 함 지며 팔다 남은 야채 등속을 내려놓고 리어카를 거꾸로 벽가에 세워 둔다.

-맛있는 냄새 나네.

-응 시장하지? 내 밥 차려주께 애기 젖이나 멕여.

아낙네가 방안으로 들어오려다 나를 힐끗 보고는 놀란다.

-어머나, 손님 오셨네요.

내가 꾸벅 인사하고 대위가 나를 소개하고 다시 강조한다.

-이 친구 대학생이라구. 나하구 같이 일하겠다구 따라나섰어.

아낙네가 배시시 웃으면서 남편에게 무안을 준다.

-일은 무슨 일. 노가다 해 봐야 제 앞가림두 못하는데.

아낙네는 서슴없이 외출복 겸용인 러닝 셔츠 자락을 까올려 아기에게 젖을 먹였다. 대위가 밥상을 차려 양손에 들고 방안에 들어섰다. 흐릿한 삼십 촉짜리 전구 아래 헤어졌던 가난한 가족들이 다시 모인 것이다.

이튿날 대위의 아내는 장사하러 나가지 않았다. 아침부터 밥을 짓고 그래도 비린 것을 밥상에 올린다고 꽁치도 사다 굽고 했다. 우리는 군청에 나가서 충청남도에 제일 큰 관급공사가 어디서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 보았는데, 현재로서는 신탄진에서 시작한 '신탄진 연초공장' 건립 공사가 제일 큰 공사판이었다. 다시 오후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대위에게 넌지시 물었다.

-장씨 형님, 그냥 주저앉아 사시지. 형수나 애들 보기에 마음이 좀 그렇더구먼….

-그럴까아?

대위는 픽 웃고는 더 이상 말이 없다.

이튿날도 아내는 장사를 나가지 않았는데 우리는 길을 떠났다. 오늘도 장사는 폐한 것이리라. 이른 새벽에 밭에 가서 야채를 떼어 오거나 역전 큰시장에 가서 싱싱한 놈들을 받아 와야만 변두리 시장에서 팔아 넘길 수 있다는데. 하여튼 대위가 몇 달 동안 도시 공사장에서 생존하며 푼푼히 모아 두었던 돈 얼마를 아내에게 주었을 것이다. 그녀는 아기를 딸애에게 맡기고는 기차역 앞에까지 대위를 따라왔다. 이제 집을 나가면 또 언제나 돌아오게 될지 피차 모르기 때문인지 서로 다투거나 하지는 않았어도 나누는 말이 별로 없었다.

-어여 들어가. 우리 기차 탈 테니까.

나는 먼발치에서 그들의 승강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대위는 아내를 달래고 그녀는 치맛귀로 눈물을 찍어 내고 하다가 돌아섰다. 역 구내로 들어가 플랫폼에서 담배 한 대를 붙여 물더니 대위는 한숨 섞어서 길게 연기를 뿜어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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