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와 연예기획사의 위상변화 실감

중앙일보

입력

한국연예제작자협회가 40여일 동안 벌인 소속 연예인의 MBC 출연 거부는 거대 방송사와 연예 기획사 사이의 세력관계가 변음을 보여주는 '사건' 이다.

지난 6월 17일 MBC '시사매거진 2580' 의 연예인 '노예계약' 보도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표면적으로는 보도 내용에 대한 반발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연예기획사의 변화된 위상을 인정하라" 는 시위로 읽을 수 있다.

거대 지상파 방송을 통하지 않고는 소속 연예인의 인기 유지나 음반 판매가 어려운 상황에서 예능국 PD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연예 기획사들이 조직력을 과시하며 자신들을 연예산업에서 동등한 역할을 수행하는 동반자로 인정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하거나 명예훼손 소송 등 법률적인 피해 구제를 취하기에 앞서 연예인 '노예계약' 보도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예능국을 상대로 출연거부에 나섰다는 점에서 드러나고 있다.

출연 거부 사태가 장기화되자 MBC는 예능국 PD들의 명의로 "가요계의 눈부신 발전을 위해 그동안 가수 여러분과 제작자 여러분의 노고가 얼마나 컸는지 온국민이 공감한다. 앞으로 예능PD들은 모두 마음의 문을 열고 가수 및 제작자 여러분과 건설적인 협의를 통해 대중가요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 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하기에 이르렀다.

방송사 입장에서 보면 연예기획사와의 세력관계 변화 이외에 그동안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연예인들을 동원해왔던 제작관행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지는 계기가 됐다.

문화개혁 시민연대가 이번 사태를 "MBC의 업보" 라고 표현했듯 1990년대 들어 각종 오락 프로그램은 물론 교양 프로그램의 진행까지 연예인에게 맡겼던 것이 화를 부른 것이다.

MBC 예능국 장태연 부장은 "이번 사태는 방송사나 연예 기획사 어느 한 쪽에 포커스를 맞추더라도 대중 문화계의 변화와 관련해 무수한 논문이 나올 정도로 중요한 사건" 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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