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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나기 전에 테이블부터 치우는 베이징의 고급 레스토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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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난 주말 베이징엔 눈이 내렸다. 폭설에 강풍이 겹쳤다. 이국에서 맞은 호된 첫눈이다. 만리장성에 놀러간 일본인 관광객 3명이 조난당해 숨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다행히 얼음이 얼 정도는 아니어서 대로와 활주로의 눈은 곧 녹았다. 하마터면 발이 묶일 뻔했다.

 중국에 갈 때마다 변화를 실감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동차의 물결이다. 금요일 저녁 베이징 시내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 앞에서 택시를 잡느라 애를 먹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 탓에 눈이 따가웠다. 매캐한 냄새도 났다. 30여 분을 기다려 겨우 올라탄 택시는 가다 서다를 반복할 뿐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광화문에서 용산 정도 거리를 가는 데 40분 넘게 걸렸다. 러시아워에 베이징에선 택시를 탈 게 아니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다. 베이징의 공기와 교통정체가 화제에 올랐다.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고 싶지만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다고 한다. 러시아워 때마다 송곳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초만원이어서 타고 싶어도 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매연에 땀냄새까지 겹치면 거의 실신할 지경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는 것이다. 요즘 서울에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대세라고 했더니 그 수준까지 가려면 앞으로 20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한탄했다.

 화려한 오피스 빌딩과 호텔, 음식점, 백화점 등 눈에 보이는 베이징은 첨단 글로벌 도시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겉만 보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한 꺼풀 벗기고 안을 들여다보면 허점이 눈에 많이 띈다. 별 5개짜리 특급호텔에 딸린 멋진 레스토랑에서 지인이 저녁을 냈다. 비싼 만큼 요리는 훌륭했다. 하지만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홀 한쪽에서는 테이블 정리와 청소가 한창이다. 하드웨어의 발전을 소프트웨어가 못 따라가는 느낌이다.

 지금 베이징 시내에는 18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다. 10년 만에 최고 지도부를 교체하는 대대적인 행사다. 중국은 몸집이 갑자기 커졌다. 전에 입었던 옷이 맞을 리 없다. 불어난 몸에 맞는 새 옷이 필요하다. 그걸 준비하는 것이 새 지도부가 할 일이다. 중국의 새 지도부는 몸에 맞는 옷을 제대로 준비할까.

 베이징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베이징 정신’이란 구호와 자주 만나게 된다. 애국, 창신(創新), 포용, 후덕이 베이징의 4대 정신이란 것이다. 중국은 아직 구호가 필요한 사회다. 구호가 사라지는 날 중국은 진정한 강대국이 될 것이다. 그릇이 작으면 물이 넘치기 마련이다. 물이 차오르면 그릇도 커져야 한다. 세계는 중국의 그릇이 커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글=배명복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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