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를 영영 잊으셨겠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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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엄마 생각>을 집어 들면 먼저 표지를 유심히 보게 됩니다. 아니, 표지에서 눈을 뗄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네요. 얼굴을 비스듬히 기울인 채 독자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와 개. 그런데 그 둘의 표정이 어찌나 해맑은지 좀처럼 모른 체 할 수가 없어요. 여덟 살쯤 되었을까요? 그림 속 여자 아이의 얼굴은 마치 골목길에서 마주친 이웃집 아이처럼 친숙하게 보입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유경이에요. 도시의 아이들처럼 머리에 노랗고 빨갛게 물을 들이지는 않았어도 들에서 우연히 만나는 들꽃처럼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유경이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둘이 삽니다. 유경이가 네 살 되던 해에 아빠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엄마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진달래꽃이 네 번이나 피고 졌는데도 엄마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어요. 유경이는 날마다 엄마를 기다리며 꿈을 꾸고 있는데 엄마는 행여나 유경이를 영영 잊어버리려 하는 건 아닌지.

우리의 가슴 아픈 현실을 담아

<엄마 생각>은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동화 속의 서글픈 사연만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 년에 일만 여명의 어린이가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있다고 하니 그 아이들의 오늘, 그리고 내일이 얼마나 고단할 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는 작가는 주변에서 그런 아이들을 자주 보았고, 그 가슴 아픈 이야기를 이 동화에 담았습니다. 그렇지만 결코 섣부른 희망이나 행복한 결말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엄마 생각>의 유경이는 행복을 꿈꿀 시간도 없이 아픈 할머니를 돌보아야 하고, 똑똑한 개 평돌이와 헤어져야 합니다. 사실 우리들의 냉정한 현실 속에서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이 쉽게 행복한 시간을 누리지는 못하겠지요.

만약 체호프의 말처럼 작가의 사명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며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엄마 생각>의 작가 이상권은 그 소임을 훌륭하게 해 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잔잔한 슬픔이 밀려오고 끝내 몇 방울의 눈물로 떨어지고 마니까요. 하지만 그 눈물에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서글픔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픈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픔의 얼굴을 가리는 아름다운 문장

<엄마 생각>은 한 줄 한 줄, 마치 시를 쓰듯이 써 내려간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 문장과 어깨를 겯고 아름다운 풍경을 펼쳐내는 그림들은 눈이 시릴 정도입니다. 글과 그림의 행복한 만남. 저학년 동화에서 이런 요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면 이 작품은 빼어난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칫 상투적인 묘사의 늪으로 떨어질 만한 사연들이 나올 때마다 작가는 아름다운 우리 말을 절묘하게 구사하며 풍성한 느낌으로 슬픔의 얼굴을 슬쩍 가려주고 있습니다. 그런 문장들은 마치 숨어서 피는 꽃을 볼 때처럼 독자들의 마음을 오래 두드리곤 하지요.

이 아름다운 작품은 어린이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어린이의 삶이 어른들에 의해서 무너질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또 어른들을 그렇게 몰아간 현실의 무게를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까요? 그래서일까요? 작가는 이 작품의 마지막을 꿈을 꾸듯 아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시골을 떠나게 된 할머니와 유경이가 평돌이를 맞기기 위해 찾아가는 산사. 힘겹게 산길을 걷고 있는데 눈이 펑펑 쏟아집니다. 그 눈은 유경이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송이로 만들어 줍니다. 할머니와 유경이, 그리고 평돌이의 지친 발자국을 눈송이들은 감쪽같이 지워 버립니다. 마치 세상의 고통을 보듬어 주는 대자연의 입김처럼.
(최덕수/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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