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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러 중재로 北·美대화 물꼬틀 듯"

중앙일보

입력

北 核재처리시설 가동 강행할 수도
韓·中 등 중재로 이르면 상반기 대화

지난해 12월 북한이 핵 동결 조치를 단계적으로 해제함으로써 한껏 고조됐던 북한.미국간 대치 움직임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사찰관 추방 이후 주춤해졌다.

그러나 북.미가 최근까지 '불가침조약 체결''북한의 선 핵폐기'라는 각자의 기본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사태 해결의 단초가 언제 마련될지는 요원한 상황이다.

북한 핵 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국내 북한전문가 20명의 견해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가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북한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6명이 "북한 핵 문제는 상당기간 위기국면으로 가다 타결책이 나올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북.미 모두 기존의 강경입장을 고수함으로써 타결책 없이 위기국면이 한층 더 고조될 것'으로 내다본 전문가는 4명이었다.

이 가운데 2명은 이라크 사태가 끝난 후에도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에 나설 것으로, 나머지 2명은 군사적 조치는 없더라도 중국.러시아를 통한 외교압박과 경제봉쇄 등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북한을 거세게 몰아붙일 것으로 각각 내다봤다.

북.미가 타협점을 찾을 것으로 전망한 전문가들은 그 근거로 "북한이 핵 위기를 고조시키는 목적이 체제보장을 위해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기 위한 것이고, 미국도 우리 정부와 중국.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가들의 평화적 해결 주장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군사행동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점을 제시했다.

국방대학교 이석수 교수는 "한국이나 주변국가들의 중재로 북.미가 전제조건으로 각각 내세운 '불가침협정'이나 '선 핵포기'에서 동시에 한발 물러나 협상테이블에 앉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미가 일단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경우 제네바합의를 대체할 새로운 합의안이 마련되고, 장기적으론 한반도 평화보장체제가 논의되는 수순을 밟아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반해 위기국면으로 계속 치달을 것으로 내다본 전문가들은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과거처럼 동북아 질서 안정차원이 아니라 반테러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며 "특히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공산국가.테러국가에 대해서는 원리주의적 차원에서 접근하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므로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명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재처리시설 가동 여부에 대해선 서로 다른 견해를 보였다. 응답자 가운데 과반수가 넘는 12명은 북한이 재처리시설 가동이라는 루비콘강을 건너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가톨릭대 박건영 교수.오승렬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등은 "북한이 재처리시설을 가동할 경우 그동안 관계개선에 공을 들여온 유럽연합(EU)을 포함한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데다, 핵 문제에만 매달리기엔 북한의 경제사정이 너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 6명은 북한이 재처리시설을 가동할 것으로 보았다. 서울대 장달중 교수는 "북한이 자신들 체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인식을 파악한 만큼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나서게 하기 위해선, 위험부담이 있다 해도 재처리시설을 가동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 2명은 북한이 재처리시설을 가동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미국의 대응에 달려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통일연구원 허문영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앞으로 경제봉쇄 등 강경책을 구사할 경우 북한은 재처리는 물론 핵무기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실제로 재처리에 들어갈 경우 재처리시설 가동을 예상한 6명의 응답자 중 2명은 '군사적 조치를 고려할 것'으로, 4명은 '군사행동 대신 강력한 봉쇄정책을 지속적으로 취할 것'이라고 각각 내다봤다.

한국국방연구원 김창수 책임연구위원은 "미국은 한국.중국.러시아 등 이해 당사국의 반대 때문에 쉽사리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을 감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명지대 이동복 초빙교수, 통일연구원 전성훈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북한의 재처리를 중지시키기 위해 중유 제공 등 유화책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며 "일단 북한이 재처리에 들어가면 미국은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화국면에 들어가는 시점에 대해서는 이라크전쟁 이전, 올해 상반기 안 등 다양했다. 대체로 상반기 안에 해결의 가닥을 잡을 가능성을 크게 봤다. 서강대 김영수 교수는 "과거 경험으로 볼 때 핵 문제는 6개월 단위로 해결됐다"며 "올해 상반기를 지나는 시점에서 북.미가 동시에 한발씩 양보하는 선에서 실마리가 잡힐 것"으로 예상했다.

북.미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경우, 응답자 가운데 10명은 우리 정부나 일.중.러 등 이해 당사국의 중재 때문일 것이라고 응답해 북.미간 중재 역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그 중 5명은 우리 정부의 중재 역할을 강조했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미국이 '제2의 제네바협정' 수준의 경제지원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한국국방연구원의 서주석 북한군사팀장은 "북한이 조건 없이 조금이라도 양보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차선책으로는 한.미.일이 대북 경제지원안을 마련하고, '평화적 해결을 추구한다'는 미국 입장을 한.미간에 구체적으로 조율해 이를 북한에 통보, 명분을 주면 물러설 것"이라고 보았다.

북.미간 타협점을 찾을 경우, 응답자 중 8명은 '핵 문제에 국한해 또 다른 형태의 제네바합의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반면, 1명(통일연구원 전현준 선임연구위원)은 '핵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평화보장체제로 이행하는 포괄적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북한이 원하는 불가침조약 체결은 미국에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으며, 북.미관계 정상화까지는 상당히 오랜기간의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리=이동현.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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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환(高有煥)동국대 교수.김성한(金聖翰)외교안보연구원 교수.김연철(金鍊鐵)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김영수(金英秀)서강대 교수.김창수(金昌秀)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남성욱(南成旭)고려대 교수.류길재(柳吉在)경남대 교수.박건영(朴健榮)가톨릭대 교수.배종렬(裵鍾烈)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백학순(白鶴淳)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서주석(徐柱錫)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팀장.오승렬(吳承烈)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동복(李東馥)명지대 교수.이석수(李錫洙)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장달중(張達重)서울대 교수.전성훈(全星勳)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현준(全賢俊)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조동호(曺東昊)한국개발연구원 북한경제팀장.조명균(趙明均)통일부 교류협력국장.허문영(許文寧)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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