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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치중하는 공정위…새 경제환경 외면

중앙일보

입력

시장경제의 파수꾼 역할을 맡아야 할 공정경쟁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재벌 규제에 치중한 경제력 집중 억제정책을 놓고 공정위 안팎에서 '실패' 판정을 받고 있는데다 대기업의 투자활동을 막는 출자총액제한이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의 비판을 듣고 있다.

특히 30대 대규모기업집단(그룹)지정 제도는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이후 변화된 경제상황을 반영하지 못해 정부 안에서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 보호에 중점을 두어야 할 담합 규제도 시장 참여자를 혼내는 데 치우친 경우도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같은 공정경쟁정책의 위기는 공정거래위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정위가 재벌 규제나 잦은 특별조사 등의 활동에 치중한 결과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촉진' 이란 본래의 업무가 소홀해졌다는 것이다.

◇ 좌충우돌식 처벌〓지난 5월 11개 손해보험사에 대한 자동차보험료 담합 결정과 과징금 부과는 위험 수준에 오른 재량권 행사의 사례로 꼽힌다. 당시 손보사들은 자동차보험료 일부 자유화 조치 이후 금융감독원의 행정지도에 따라 보험료 인상 수준을 맞췄다가 공정위로부터 업계가 담합한 것으로 판정받아 5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당시 공정위 관계자는 "보험사들에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정부 당국의 잘못된 행정지도에 따른 경우도 담합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는 "행정지도가 문제라면 정부 안에서 해결할 문제지, 행정지도를 따른 민간기업을 처벌하는 것은 무슨 논리냐" 고 호소했다. 금감원 관계자도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행정지도까지 문제삼는 것은 지나치다" 고 반발했다.

◇ 무리한 대기업 혼내주기〓재벌 2, 3세에 대한 경제력 집중 여부도 최근 공정위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공정위는 사법부로부터 법 논리에 어긋난다는 판정을 받았다. 공정위가 시민단체의 문제제기에 따라 처벌한 삼성SDS의 특수관계인 지원 사례가 그렇다.

공정위는 삼성SDS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보 등에게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헐값에 넘겨 부당지원했다며 1백58억원의 과징금을 매겼다. 그러나 법원은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부당지원으로 볼 수 없다" 고 판결했다. 공정위는 최근 삼성 계열사가 李상무보의 인터넷 기업 주식을 사들인 것에 대해선 "정상가격보다 오히려 싸게 샀다" 며 무혐의 판정을 내렸다.

◇ 정부 안에서도 '왕따'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최근 "공정위는 정부 안에서도 사면초가" 라고 말했다. 이는 30대 그룹 지정과 출자총액제한 제도에 대한 공정위의 경직된 태도 때문이다. 정부 안에서 이 제도를 고수해야 한다는 곳은 사실상 공정위가 유일하다.

재경부 관계자는 "덩치 면에서 현격하게 차이 나는 그룹들을 단지 순자산이 많은 순으로 끊어 동일한 규제를 하는 것은 경제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공정위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더구나 이같은 30대 그룹 규제는 다른 정부부처가 대기업들을 규제하는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들이 출자총액 규제에 묶여 투자시기를 놓치거나 심지어 30대 그룹에 지정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사업도 인수를 꺼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상렬 기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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