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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세상탐사] 검찰 개혁 공약을 보는 제3의 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95호 31면

“어려운 수사를 조합해 지휘, 관리할 수 있는 인재가 부족하다. 다시 말해 아마추어다.”
“처음 작성한 시나리오에 억지로 끼워 맞춰 사건을 만들고 있다. 공갈적인 취조가 도를 넘어섰다.”

“더 이상 프로 수사 집단이 아니다. 제공받은 정보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를 꿰뚫어볼 수 있는 인재가 없기에, 배후가 있는 정보를 덥석 물어 안이하게 사건을 짜맞추고만 있다.”

책을 펴 들었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 전부터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 도는 얘기들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표지의 제목을 다시 봤다. 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

책을 쓴 이는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의 법조기자 출신인 이시즈카 겐지(石塚健司). 글머리에 있는 언급들은 이시즈카가 취재수첩에 적은 전·현직 검찰·경찰 간부들의 지적이다. 그는 ‘최강의 수사기관’으로 불리던 도쿄지검 특수부의 위상이 왜 추락했는지를 추적했다. 그의 결론은 “법무성 관료들을 특수부에 배치하는 등의 인사 시스템 변화로 ‘수사의 고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와보자. 검찰이 또다시 위기다. 12월 대선의 유력 후보인 새누리당 박근혜·민주통합당 문재인·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모두 검찰 개혁을 다짐하고 있다. 박 후보는 특별감찰관·상설특검제 도입을, 문·안 후보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제시하고 나섰다. 특히 문·안 후보는 ‘사정(司正)의 상징’이던 대검 중수부 수사 기능을 폐지하거나 중수부를 없애자고 말한다. 후보 지지 여부를 떠나 그 주장에 공감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렇게 검찰 수사가 불신받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직접적으로는 주요 사건마다 ‘표적 수사’ 시비와 ‘봐주기’ 의혹 등 정치적 편향 논란이 불거진 데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부터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까지 검찰 수사가 야당 쪽엔 집요한 반면 집권세력엔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 더 들어가보면 그에 못지않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검찰의 수사력이 취약해졌다는 사실이다. 현 정부 들어 ‘정치검찰’ 비판이 힘을 얻게 된 계기는 2009년 한명숙 전 총리 수사였다. 검찰은 한 전 총리를 뇌물 혐의로 기소했지만 1,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올 들어서도 노건평씨 뭉칫돈 의혹과 양경숙 공천 비리 의혹 수사에서 무리하게 앞서나가다 헛발질을 하고 말았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확실한 증거로 100% 유죄다, 그런 자신이 없으면 하지 말았어야죠. 제대로 가려 수사했다면 정치검찰이란 말까지 나왔을까요. ‘봐주기’ 수사도 마찬가지죠. 설사 위에서 시킨다고 해도 수사의 ABC를 안다면 그렇게 조사를 했겠습니까.”

많은 법조인은 그 이유를 검찰 인사에서 찾는다. 그간 정권교체가 이어지면서 주요 수사 라인이 계속 바뀌었다. 주된 기준은 수사 능력이 아니었다. 어느 지역, 어느 대학 출신인지였다. 경험 많고 강단 있는 특수부 출신이 홀대받는 경향도 나타났다. 한 전직 검찰 간부는 “일단 권력을 잡으면 ‘잘 드는 칼’보다 ‘말 잘 듣는 칼’을 원하는 것 같다. ‘언제 우리(집권세력)를 칠지 모르는데…’라는 계산이 깔린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런 문제의식이 던지는 시사점은 검찰 개혁의 목표가 검사들이 미우니까, 잘못했으니까 그들의 권한을 뺏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정 시스템을 바로 세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검찰권의 오·남용을 막되 부정부패 척결 기능은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어떤 형태의 사정 조직을 만들더라도 주력은 검사 출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편향을 막는 노력과 함께 ‘잘 드는 칼’을 살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인사에 대한 외풍을 어떻게 차단하고, 수사 능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로 다뤄야 하는 건 그래서다. 검찰 스스로 반성과 분발이 요구되는 것도 그래서다.

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는 ‘미스터 특수’로 불리던 요시나가 유스케(吉永祐介) 전 검사총장(검찰총장)에 대한 오마주로 끝을 맺는다. ▶시나리오를 현장에 강요하지 않고 ▶대상자의 명예를 위해 기소 때까지 밀행(密行) 수사 원칙을 고수하며 ▶권력형 비리엔 추상같으면서도 ▶‘검찰 파쇼’를 경계하는 검사.

우리 검찰도 다르지 않다. 그런 검사들이 수사의 전면에 서는 날, 우리의 검찰 개혁은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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