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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월드] '테러의 온상' 비난받는 중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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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중동(中東)'하면 무슨 생각이 나나요? 석유.사막.이슬람교.아라비안나이트 등이 머리에 떠오를 테고, 요즘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 움직임과 테러.'악의 축(軸)'같은 말들도 연상될 거예요.

상당 부분 부정적인 인상들이죠?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잘못된 선입견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아요. 새해 첫 틴틴월드에서는 서정민 중앙일보 중동 전문기자와 함께 중동.이슬람 세계를 제대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서기자는 이집트 카이로-아메리칸 대학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동정치로 각각 석.박사 학위를 받은 지역전문가입니다.

1. 중동은 왜 '테러의 온상'이란 말을 듣나요?

9.11 테러와 인도네시아 발리 폭탄테러 등 최근의 굵직한 테러사건 용의자들이 대개 중동 사람 또는 이슬람 신자들이란 점 때문에 그렇게 불리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사실 테러는 미국과 소련이 긴장관계에 있었던 1950~80년대 냉전시대에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중동만 그런 건 아니지요. 일본 적군파의 여객기 납치나 독일 적군파의 요인 연쇄 암살 등이 대표적인 예지요.

90년대부터 중동인들이 관여한 테러가 많아졌지만, 여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중동 국가들은 대부분 독재정권이 통치하고 있는데, 이에 저항하던 반정부단체들이 투쟁에 실패하자 90년대 들어 잇따라 해외로 나가 국제적인 무장조직을 만들었습니다.

무장조직들은 자신들의 반정부 투쟁 실패가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미국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공격의 방향을 미국과 그 동맹국들(서구)로 돌렸습니다. 9.11테러 용의 단체인 알 카에다 조직이 대표적이지요.

이들은 중동 지역의 반미감정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어요. 많은 중동 사람들은 미국이 중동의 '원수'인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뿐 아니라 이라크.이란 등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중동 국가들에 대해 경제봉쇄부터 군사공격까지 서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무장조직들은 이를 이용해 중동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미국에 대한 테러 요원으로 쓰고 있지요. 이 때문에 주로 서구인들이 중동을 '테러의 온상'이라고 비난하는 겁니다.

그러나 반미감정을 테러 등 극단적인 행동으로 옮기거나 이에 동조하는 중동 사람은 극소수예요. 대부분은 폭력을 싫어하는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2. 중동 사람은 모두 이슬람을 믿나요?

대다수가 이슬람 신자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레바논 인구의 약 40%는 기독교인이고, 이집트.시리아.요르단도 인구의 10~15%가 기독교인입니다. 그 밖에 유대교.힌두교 등을 믿는 사람들도 중동 여러 국가에 퍼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중동 국가는 종교의 자유가 확립돼 있고, 이슬람 신자가 아닌 사람도 사회적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는 물론 출세할 기회도 보장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라크의 2인자인 부총리 타리크 아지즈는 기독교인이죠.

3. 중동 나라들은 모두 석유 부자인가요?

아닙니다. 석유가 나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이란 등 걸프해 주변 국가들과 리비아.알제리 등 전체 중동 국가의 3분의1 정도에 불과합니다.

산유국들도 70년대 석유파동으로 벼락부자가 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80년대 이후 지속적인 석유가격 하락과 정치불안으로 경제가 어려워진 상태예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중동을 대표하는 부자 나라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민소득이 10년 전의 절반 수준인 1만달러로 떨어졌어요.

4. 중동에서는 남녀 차별이 심하다면서요?

서구의 기준에서 보면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은 자동차를 운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동 사람의 시각으로는 여성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보호'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슬람이 중동에 전파된 7세기 이전 중동에서는 여자 아기가 태어나면 생매장해버리는 등 남녀 차별이 극심했어요. 그러나 이슬람이 지배적인 종교가 되면서 여성도 재산을 상속받고 남편과 동등한 혼인관계를 맺는 등 남녀 평등 원칙이 확립됐습니다.

이 원칙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대부분 중동 국가들은 여성의 활동에 대체로 개방적입니다. 한 예로, 이집트.시리아 등의 여성 취업률은 우리나라보다 높답니다. 그러나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에서는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5. 그러나 일부다처제나 여성이 베일로 얼굴을 가리는 풍습은 남녀 차별 아닌가요?

일부다처제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7세기에 이슬람이 중동에서 처음 퍼질 때, 이슬람을 탄압하는 부족들과의 전투에서 많은 남성 이슬람 신도가 전사해 과부와 아버지 잃은 아이들이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이슬람 지도자들은 남자 한 명이 아내를 네 명까지 맞도록 허용해 문제를 해결했고, 이 전통이 오늘날까지 내려온 거죠. 그러나 현재 부인이 여러 명인 중동 남성은 5% 미만이고 대부분 한 아내하고만 삽니다.

여성의 베일도 중동 사람들은 위에 소개한 것처럼 '속박'이 아니라 '보호'라고 주장합니다. 얼굴을 가림으로써 외출 때 모르는 남성의 접근을 피하고 안전하게 활동하려는 취지라고 해요. 그러나 여성이 베일을 안 쓴다고 해서 이슬람법을 어기는 것은 아닙니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는 '여성은 가슴을 가려야 한다'고만 돼있기 때문이죠. 또 남자도 복장에 제한이 있어 무릎 위를 드러내는 반바지는 입을 수 없습니다.

6. 중동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된다는데, 음식문화가 왜 까다롭나요?

무엇보다 코란이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란에는 돼지고기를 비롯해 죽은 고기.짐승의 피, 그리고 하느님(알라)의 이름으로 잡지 않은 모든 것을 먹지 말라고 나와 있어요. 그러나 여름이면 섭씨 50도 이상 올라가는 무더운 기후 때문에 상하기 쉬운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음식문화가 생겼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아요.

이렇게 특정한 음식을 기피하는 문화는 다른 종교나 사회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돼지고기는 물론 새우.조개 등도 먹지 않는 등 더 까다로운 음식문화를 갖고 있지요. 유럽인들이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비슷한 예입니다. 음식은 그 나라의 환경과 사람들의 생각에 따른 문제이므로 일단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7. 중동에서는 도둑질하면 손목을 자르고 간통한 여성을 돌로 쳐죽인다면서요?

사우디아라비아.이란 등 일부 국가에선 오랜 이슬람 전통에 따라 이런 처벌을 하기도 합니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규칙을 어긴 자는 본보기로 가혹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서구의 법을 받아들인 이집트.이라크 등 대부분의 중동 국가에선 이런 전통이 이미 없어졌답니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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