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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이 문제] 원지동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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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주민 오금택(오른쪽)씨와 최한성씨가 국립중앙의료원이 들어설 원지동 부지에서 지지부진한 이전 문제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 입구. 올해 1월부터 운영되고 있는 화장장으로 올라가는 곳이다. 길 오른 편에는 잘 가꿔진 조경수와 정돈된 휴식 공간이 펼쳐져 있다. 반면 공원 왼편은 달랐다. 공원 내 잔디마당을 지나니 경부고속도로 방향으로 2만여 평의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을 바람에 생기를 잃은 누런 잡풀들이 무성했다. 넓은 공터 주변으로 회색 펜스가 쳐져 있었다. 뒤로 보이는 정돈된 공원과 대비를 이뤘다. 바로 국립중앙의료원이 이전할 부지다. 2003년에 처음 이전 계획이 세워졌고 2010년 2월엔 서울시와 국립의료원이 신축·이전에 대한 상호협약(MOU)을 맺었다. 그러나 2013년이 다가오는 지금까지 부지엔 기둥 하나 세워져 있지 않았다.

이곳을 찾은 주민 최한성씨는 “서울시가 국립의료원 이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계속 협조 요청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에서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토로했다. 주민 오금택씨는 “국립의료원 같은 큰 의료시설이 우리 지역에 들어서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있었다”며 “지역에 화장장이 들어섰지만 지금까지 주민들이 받은 혜택이 없다. 서울시가 주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변 부동산 중개소에서도 한숨 소리가 짙다. 한 중개사는 “화장장이 들어선 이후 거래가 전혀 없다. 주택 매물이 15채 미만이어야 정상인데 현재 150채가 넘게 쌓여있다. 주택 대지가 평당 1700~2000만원이었지만 지금은 1500만원으로 내렸다. 그린벨트 전답 매물도 20~30개가 적당한데 540개나 나와있다. 도로변 전답이 평당 500~700만원에서 반값으로 떨어졌다”며 “국립의료원이 들어오면 지금보단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2001년 원지동을 추모공원 부지로 지정했다. 주민들 반대가 심했다. 2003년 국립의료원을 추모공원 옆으로 이전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주민 대부분이 이 조건을 받아들여 반대시위가 잦아들었다. 이후에도 일부 주민이 서울시를 상대로 추모공원 건립 반대 소송을 냈지만 2007년 패소했다. 추모공원은 올해 1월 운영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서울시가 이전 약속을 어기고 있다고 말한다. 주민들은 2003년 국립의료원 이전 요청을 서울시가 보건복지부에 요청했고 복지부가 이에 응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서울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복지부가 원지동에 이전하고 싶다고 먼저 요청한 문서가 있다”며 “그래서 우리 실무자가 주민들에게 ‘이쪽(추모공원)으로 국립의료원도 이전해 온다’고 말했을 수 있지만 주민 설득을 위해 우리가 먼저 복지부에 요청한 건 아니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시 복지부가 의료원 이전을 위해 여러 후보지를 물색 중이긴 했지만 원지동 이전을 확정해 요청할 단계는 아니었다”며 “서울시가 먼저 요청해 왔다”고 반박했다.

이전이 지연되는 이유는 원지동 부지 매각 가격 때문이다. 서울시는 시와 국립의료원이 부지 감정평가사를 각자 선정하고 평가 후 나온 토지 가격으로 매각 절차를 밟으면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보건복지부와 국립의료원은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부지 매입을 해야 하는 국립의료원 측은 “해당 부지가 종합의료시설을 위한 토지로 용도가 바뀌면서 시가 주민들로부터 사들일 때보다 땅값이 5배 올랐다”며 “감정 평가를 하되 상승분은 제외한다는 협약을 맺고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립의료원 측에서 부지 확대를 요구한 일도 이전이 늦춰진 이유다. 2010년 2월 상호협약을 맺은 후 그 해 4월 국립의료원은 복지부 직영에서 독립 법인으로 바뀌었다. 협약 당시 재직 중이던 원장은 퇴임했고 새로운 원장이 왔다. 의료원 측은 주변 체육공원을 의료시설 부지로 추가 시켜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부지를 확대해 달라고 해 지난해 말까진 이전 문제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국립의료원 관계자는 “경부고속도로 확대 계획으로 부지가 좁아졌기 때문에 확대 요청을 했다”며 “지난 8월엔 현재 부지만이라도 달라고 했지만 협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립의료원이 있는 을지로 8000여 평 부지 매각도 문제다. 복지부와 국립의료원은 이 땅을 민간 또는 공공기관 개발자에게 모두 팔기 원한다. 서울시는 부지 일부를 공공의료시설 등의 공익 목적 용도로 지정한 후 개발자에게 팔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의료원이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의료시설을 해온 만큼 이전 후에도 의료시설을 위한 부지를 확보해 놔야 하지 않겠느냐”며 “우리는 이 지역을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서울시는 의료원 이전으로 의료 공백을 걱정하지만 이 지역은 이미 의료 과잉 공급 상태”라고 답했다. 국립의료원 관계자도 “일단 우리가 개발자에게 부지를 판 후에 서울시가 부지 일부를 기부체납 형식으로 받아 의료시설을 지으면 되는 것 아니냐”며 “미리 의료시설 용도로 지정 해버리면 팔 때 땅값만 깎인다”고 했다.

이렇듯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국립의료원의 사항별 의견 차이로 이전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달 23일 국립의료원과 국립재활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민주통합당 김성주 의원이 이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김 의원은 “국가적 의료서비스 확충사업인 권역외상센터가 들어설 국립의료원 이전이 지연되면서 다른 외상센터 건립도 차질을 빚고 있다”며 “서울은 물론 경기도민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불만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주민 오씨는 “주변 14개 자연 부락 대표들과 함께 주민 서명을 받고 있다”며 “이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추모공원 폐쇄 조치를 위한 단체 행동도 할 생각”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글=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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