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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달라도 너무 다른 한·미 대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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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유승권
미국 미주리대 교수 겸
부설 아시아센터 부소장

한국과 미국 양국의 대통령 선거가 임박했다.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격돌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오는 6일 차기 대통령이 결정된다. 양국이 같은 해에 대선을 치르는 것은 20년 만이다. 양국 간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미루어 볼 때 이번 대선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새로 선출된 양국 대통령이 적어도 미 대통령의 임기인 4년 동안 호흡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양국 간에는 현재 북한 핵 문제와 군사 및 경제 협력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대선의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런 양국의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고유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적지 않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통합의 리더십이다. 이번 미국 대선 과정에서 롬니가 내세우는 자신의 주요 경력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롬니는 자신의 주지사 시절 주의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했던 민주당의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무난히 주 정부를 이끌었다고 내세우고 있다. 대화와 협상의 정치를 통해 장기적 안목을 갖고 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이 검증됐다는 주장이다.

 오바마도 집권기간 동안 꾸준히 건강보험개혁 등 주요 정책 과제와 관련해 공화당의 협조를 요청하는 등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통합의 정치를 펼치기 위해 노력했다고 역설하고 있다. 정책 방향이 전혀 다름에도 이들 모두가 민주·공화 양당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초당파적인 정치의 가치를 유권자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판에서의 선명한 색깔이 요구되는 우리 정치 풍토와는 사뭇 다른 점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포용의 정치가 오히려 무능력과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오인되면서 적과의 타협 또는 철새라는 오명이 붙기도 한다.

 둘째는 대선 전략에서 정책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최근 세 차례의 TV토론을 치른 오바마와 롬니는 막바지 유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생중계된 TV토론을 통해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면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적극 공략했다. 후보들은 경제·외교안보·교육·복지 등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고 또 질문을 받으면서 평가받았다. 이외에도 타운 홀 미팅이나 학교와 기업을 방문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그들과의 교감을 형성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반면 한국의 대선 캠페인에서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나 여론 형성의 중요성이 덜 부각되는 듯하다. 대선을 불과 2개월도 남기지 않은 현 시점에서 한국이 직면한 과제와 향후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이슈화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 대선에선 야권 후보 단일화 문제, 정수장학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북 발언 진위 여부 등이 주요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이런 것들은 국가 비전과는 거리가 있는 논란거리에 불과한 문제다.

 셋째, 한국 대선에서 경쟁 후보에 대한 사소한 약점과 허점을 부각하는 네거티브 전략이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극심해진다는 것도 안타까운 점이다. 이 같은 네거티브 전략은 결국 후보 개인의 능력보다는 아주 엄격한 도덕적 검증에 무게를 두기 때문에 대선을 과거 들추기 싸움판으로 전락시키기 쉽다. 반면 미국 대선에선 치명적 잘못이 아닌 경우 이런 공방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대통령의 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양국에서 동시에 대선이 치러지는 일은 20년 뒤에나 있게 된다. 그때는 양국 대선을 비교하면서 한국 정치에서 배울 점이 많은 상황이 벌어지길 내심 기대해 본다.

유승권 미국 미주리대 교수 겸 부설 아시아센터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