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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최다출장 심판, 내부 갈등으로 퇴진

중앙일보

입력

국내 프로야구 최고의 명심판으로 꼽히는 이규석(54)씨가 내부 갈등으로 소리소문없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소속된 심판중 유일한 원년 멤버로 최다경기 출장기록(2천215경기)까지 보유하고 있는 이규석 심판이 최근 구두로 사의를 표명하고 20년간정들었던 마스크를 벗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7월14일 롯데-SK(사직)전을 끝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있는 이규석씨는후반기를 앞두고 김찬익(52) 심판위원장으로부터 2군에 내려갈 것을 권고받자 차라리 쉬고 싶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시즌 도중에 옷을 벗게 된 이규석씨는 KBO 내부에서는 물론 일선 감독들까지도 좀처럼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만큼 권위를 인정하는 국내 최고의 명판관이다.

경기공고와 성균관대에서 내야수로 활약했던 이규석 심판은 경기상고 감독(71-74년)을 역임한 뒤 75년 대한야구협회 심판으로 '그라운드의 판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79년부터는 한양대 코치로 재직하다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82년 KBO 심판위원으로 위촉돼 20년동안 외길을 걸어왔다.

지난 99년 프로야구 최초로 2천경기 출장의 위업을 달성했던 그는 최다출장기록뿐만 아니라 해박한 야구지식과 정확하고 소신있는 판정으로 국내 최고의 심판으로평가받았다.

특히 '박재홍 타격폼 파동'이 일었던 96년 포스트시즌에서는 국내프로야구에서이규석 심판의 비중을 짐작케 하는 일례가 있었다.

당시 신인 박재홍의 타격폼을 놓고 시즌내내 현장 감독들과 심판위원회가 규정위반 시비를 벌였고 포스트시즌을 앞두고는 일부 구단에서 심판들의 출신 지역과 편파 판정까지 들먹이며 경기 자체를 보이콧할 움직임마저 보였다.

곤경에 처한 KBO는 이례적으로 심판 배정순서를 무시하고 가장 공정성을 인정받았던 이규석 심판을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주심으로 긴급 투입, 감독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무사히 포스트시즌을 마칠 수 있었다.

이규석씨는 '98시즌을 마친 뒤 심판위원장으로 추대받기도 했지만 현장을 계속지키고 싶다며 고사했었다.

결국 최고참 심판으로 현장에 남았지만 명예로운 은퇴식은 고사하고 시즌 도중에 물러나게 된 이규석씨는 "개인적으로 2천500경기 출장을 꼭 달성하고 싶었는데조직에서 원하지 않으니 도리가 없었다"며 "내부적으로 갈등이 있었지만 구차하게늘어놓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김찬익 심판위원장은 "프로야구에 공이 많은 분인데 여러가지 오해가생겨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뒤늦게 이규석 심판의 퇴임소식을 접한 야구인들은 "후배들이 존경하는 최고의심판이 은퇴식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풍토가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연합뉴스) 천병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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