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루스코니 몽니에 유럽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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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베를루스코니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6) 전 이탈리아 총리의 ‘몽니’에 유럽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유럽 재정위기의 뇌관을 다시 때릴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27일(현지시간) 밀라노의 집 앞으로 나와 “마리오 몬티(69)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에 대한 지지 철회를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에 대한 분을 삭이지 못한 듯 화가 잔뜩 난 표정이었다.

 베를루스코니는 “몬티 정부가 ‘경기 침체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긴축 정책에 대해서도 “국민을 상대로 한 강탈 행위”라고 목청을 돋웠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자유국민당(PDL)이 수일 안에 현 정부에 대한 협력을 중단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 연합에 속해 있는 PDL이 야당으로 돌아서면 몬티 정부는 유지되기 어렵다. 2007년 베를루스코니가 만든 PDL은 다음 해 총선에서의 승리로 현재 630석의 이탈리아 하원에서 228석으로 다수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PDL이 반기를 들면 몬티 정부는 의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식물 정부’가 된다. 몬티 정부는 지난해 11월 순전히 긴축을 위해 탄생했다. 당시 이탈리아 국채(10년 만기) 금리는 연 7%를 웃돌았다.

 블룸버그통신은 “몬티 정부가 무너지면 국채 금리가 다시 7%를 넘어설 수도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28일 보도했다. 이탈리아 위기의 재연이다. 이탈리아 국가부채는 올 6월 말 현재 2조1000억 유로(약 2980조원) 정도다. 부채 규모가 너무 커 독일과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구제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방송사가 미국 드라마의 판권을 유통시키는 과정에서 고의적으로 행한 탈세에 개입한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2006년 이전의 범죄에 대해서는 형량을 3년씩 감해주는 사면법에 따라 실제 형기는 1년이고, 최종심 판결 때까지 수감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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