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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보기] 인권 눈뜨게한 '정신적 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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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적어도 상식 속의 그는 기인(奇人)에 가깝다. 바람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사라진다. 있었던 흔적조차 남김없이 가져간다. 스스로를 비움으로써 남을 채운다. 그것이 그에겐 진정한 채움이란다.

유독 눈이 맑은 남자. 볼품없는 차림새와 헝클어진 더벅머리는 눈만을 더욱 빛나게 한다. 노무현 당선자는 자서전에서 그를 이렇게 적었다. '영혼이 맑은 남자'.

이호철. 선거 때면 나타나 모든 걸 쏟아놓고 이내 사라지는 사람. 그리고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바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잊어달라 주문하는 그는 그렇기에 기인이란 소리를 듣는다.

그는 노무현 당선자의 측근 중 측근이다. 측근이란 표현보다는 동지란 말이 더 가깝다. 이번 선거에서도 노무현 바람의 동력이었 다. 노무현씨는 남에게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정신적 형제'. 그러나 지금 이호철은 꼭꼭 숨어 있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는 부산대 법대 77학번이다. 그러나 1981년 부산학림사건으로 구속됐다. 그때 노무현이란 신참 변호사를 만난다. 옥중의 피의자 이호철은 무료변론을 자청한 盧변호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저를 잡혀오게 만든 그 이념서적들을 읽어보셨나요?"

"안 읽어봤는데요."

이호철은 쪽지에 책 이름들을 적어줬다. 읽어본 뒤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래야 자신의 억울함도 알 거라 했다. 인권변호사 노무현은 그렇게 출발했다.

7년 뒤. 盧변호사는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이호철을 보좌관에 임명했다. 그리곤 자신의 집 문간방까지 내주며 식구처럼 지냈다. 盧의원은 자신의 월급도 보좌진과 함께 똑같이 나눠 썼다. 의원과 비서들은 형제와 같았다.

동생들은 형을 돕기 위해 서울 신촌에 카페를 차렸다. 꿈을 비는 마음이란 뜻으로 '꿈비'라 이름지었다. 그곳은 운동권 출신 백수들의 쉼터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인 이호철은 역시 달랐다. 盧의원의 임기가 끝나자 그는 떠났다. 애당초 정치엔 생각이 없던 그였다. 그는 인생을 여행이라 여긴다. 정치도 그에겐 잠시 들렀다 가는 여행지 중 하나다. 부산으로 내려온 그는 여행을 다녔다.

잠시 학원을 했지만 그에겐 맞지 않았다. 그는 배낭을 메고 전국을 누볐다. 좁다 느낄 땐 바다도 건넜다. 주로 오지를 찾아다녔다. 그 중간중간 그는 노무현의 선거전에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배낭을 멨다. 이제는 아예 여행사를 하고 있다.

대선 이후 그는 딱 한번 서울을 찾았다. 盧당선자 장남 결혼식에 참석했다. 식장의 盧당선자는 그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호철아, 니한텐 내가 고맙다 해야겠제?"

호철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식장을 나온 그는 부산행 밤차를 탔다. 사람들과 섞이기 싫어서였다. 떠나는 그는 남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아 있어 봐야 술밖에 더 묵겠나."

지금 그는 다시 여행을 떠나려 한다. 정치적 오지가 그의 행선지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 그가 가려는 곳이다. 그 속내를 알 길은 없다. 권력의 속성을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못다 이룬 더 큰 꿈이 있기 때문일까. 그도 저도 아니라면 모든 걸 이뤘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는 기인 아닌 기인이기 때문이다.

이연홍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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