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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할리우드 거대미디어의 세계전략'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월 세계 미디어업계를 뒤흔든 뉴스는 거대 미디어기업 타임워너와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아메리칸 온라인(AOL)의 합병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재벌의 탄생을 두고 저자는 ''미디어 신시대 개막'' 이라고 규정한다. 1천6백억달러라는 인수.합병(M&A)의 규모 때문이 아니다. 타임워너 매출액의 5분의 1밖에 안되는 인터넷 미디어가 구 미디어의 거물을 삼켰기 때문도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규정한다. "당시 M&A는 과거 구 미디어끼리의 짝짓기와 질적으로 다르다. 콘텐츠와 배급 시스템을 연결해 자기완결적인 고리를 엮은 수직통합형이라는 차원이 중요하다. 타임워너가 영화 케이블채널 HBO 등을 갖고 오락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면 AOL은 이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흘려보내는 파이프라인이다. " ''수직통합형 M&A'' , 이것이 신간에서 다뤄지는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오늘을 읽는 키워드다.

◇ 미디어 기업의 ''생물학적 진화'' 〓 ''AOL타임워너'' 등장 이전의 움직임을 보자. 1989년 타임은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사 워너브러더스를 삼켰다. 이 합병으로 타임은 벌써 출판.영화.음악에 걸친 미디어왕국이 됐고, 이후 CNN을 소유한 ''터너 브로드캐스팅 시스템'' 을 사들여 방송업까지 발을 뻗었다. 그렇다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한 미디어의 생물학적 진화 최종 모습이 ''공룡 AOL타임워너'' 인 셈이다.

이 책은 미디어 진화 과정의 오늘에 관한 종합리포트다. 닛케이신문 기자가 현장 중심으로 엮은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명확하다. 미디어와 오락이 이종(異種)교배돼 급류를 만들고 있는 미디어 혁명 내지 콘텐츠 혁명은 오늘날 지구촌 전대미문의 환경변화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진화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를테면 또 다른 충격적 M&A는 99년 미국의 3대 방송사인 CBS가 바이어컴에 합병된 것이다. 영화관 체인기업 바이어컴은 그 이전 파라마운트사를 사들였고, 비디오 대여 최대 기업 블록버스터와 음악전문 MTV 등을 옆구리에 끼면서 이미 미디어 그룹으로 변신 중이었다. 이 인수.합병을 CBS 입장에서 읽어보자. 케이블TV의 등장과 함께 ''좋았던 시절'' 이 가버린 매체가 CBS였다. 그렇다면 인프라만 덜렁 끼고 있느니 미디어그룹의 품에 안기자는 것이 CBS의 선택이었다.

◇ 꼬리무는 인수.합병의 사례들〓또 다른 메이저 방송사 ABC□ 이 방송사 역시 95년 월트디즈니의 우산 속에 합류했다. 본래 디즈니는 애니메이션과 테마파크를 주축으로 했으나, 자신들이 만든 영상 콘텐츠를 흘려보낼 채널이 필요해 방송사를 끼고 수직통합을 이룬 것이다. 미디어업의 지각변동은 위스키 시바스리갈을 만드는 캐나다의 시그램이 98년 유럽의 음반메이저 폴리그램을 사들여 음악 콘텐츠를 확보하는 변신에서도 가늠된다. 물론 그 이전 수직통합의 원조는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뉴스 코퍼레이션.

영국.미국의 언론재벌 ''뉴스'' 는 85년 할리우드의 20세기 폭스 인수와 함께 방송사 ''폭스 TV'' 를 세웠고, 스포츠 콘텐츠 확보를 위해 LA 다저스 구단을 사들였다. 그러나 미국의 국민총생산(GDP)이나 고용효과에서 이미 미디어업이 기간산업임을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 미디어업과 자동차.전자업계의 비교〓이를테면 영화산업 종사인구는 60만명으로 자동차업계의 96만명과 별 차이가 없다. 99년 미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영화.방송의 매출액(1천5백3억달러)은 전자.전기업(1천5백73억달러)과 맞먹는다. 따라서 미디어.엔터테인먼트업은 월가(街).실리콘 밸리와 함께 미국경제의 3대 핵이라는 것이다. 부가가치도 그렇지만, 미디어업이 디지털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하며 ''실리우드'' 로 가는 추세 역시 음미해 볼 만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주인이 번갈아 바뀌는 와중에서 의연히 콘텐츠업의 정점에 서있는 할리우드의 콘텐츠업.미디어업의 진화가 오늘날 탈(脫)현대 사회에 암시하는 변화란 무엇일까. 우선은 오락산업의 영역확장 현상이다. 저자는 TV.신문.출판.스포츠.광고.인터넷이 모두 넓은 의미의 오락 개념에 속한다고 말한다. 이뿐 아니다. 현대 들어 유통.패션.항공, 심지어 금융에 이르는 경제활동이 오락의 요소(E-Factor)를 갖게 됐음을 환기시킨다.

즉 경제 업종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비즈니스와 오락은 서로를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와중에 콘텐츠란 성격상 영화에서 봉제인형.치킨에 이르기까지 무수하게 옷을 갈아입는 변신이 주특기라는 확인을 이 책에서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미국 중심의 이 책은 강 건너 얘기가 아니다. 대세는 역시 그 쪽이고, 한국 역시 그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결국 이번 신간은 외부에 실체를 잘 드러내지 않아왔던 할리우드를 포함한 미디어업에 대한 다중(多重)묘사다. 미래서의 역할도 부분적으로 겸하고 있는 이 책에서 미디어업의 큰 그림을 점검해볼 일이다.

조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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