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쿠바야구의 자존심' 라파엘 팔메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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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의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비록 미국이 쿠바를 꺾고서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아마 야구의 최강국은 미국이 아니라 쿠바라는데 대해서는 대부분의 팬들이 공감하는 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명성에는 전혀 걸맞지 않게 세계 최고의 야구 무대라는 메이저리그에는 쿠바 출신의 선수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올랜도 에르난데스(뉴욕 양키스)나 호세 칸세코(시카고 화이트삭스) 정도 만이 수퍼스타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정도라면 쉽게 이해될 듯.

그러나 진정한 최고의 쿠바 출신의 선수를 지목해야 된다면 이들보다는 라파엘 팔메이로(텍사스 레인저스)를 선택해야 될 것이다. 현재 통산 홈런 426개를 기록하며 이 부문에서 역대 순위 28위를 달리고 있는 팔메이로는 꾸준한 실력을 보이며 칸세코가 이루지 못한 500홈런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쿠바 선수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칸세코의 통산 홈런수는 451개로 팔메이로의 기록보다는 25개가 더 많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부터 칸세코를 괴롭혀 왔던 잦은 부상과 지난 시즌부터 나타나고 있는 그의 급격한 홈런포의 감소추세를 생각한다면 칸세코에게 500홈런 달성이라는 신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쿠바 야구의 진정한 영웅이 되려는 팔메이로는 이 500홈런의 달성과 함께 또다른 신화를 향해 도전하고 있다. 행크 에런, 베이브 루스, 윌리 메이스, 프랭크 로빈슨, 테드 윌리엄스 그리고 에디 머레이 등 그 이름만으로도 메이저리그를 대표하기에 충분한 이들 6명만이 달성했었던 500(홈런)-500(2루타)라는 도전이 바로 그것이다. 팔메이로는 이러한 기록 도전을 통해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현재 팔메이로가 기록하고 있는 홈런과 2루타는 각각 426개와 475개. 적어도 500홈런은 올시즌 내에 달성이 어렵다 하더라도 500개의 2루타 달성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팔메이로가 500 2루타만 작성한다 하더라도 그에겐 역사상 36번째로 이 기록을 달성한 선수라는 영예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팔메이로는 역사상 7번째로 500-500을 달성한 선수라는 이름보다는 이 기록을 달성한 8번째 선수로 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지금까지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536개의 홈런과 함께 470개의 2루타를 기록하며 팔메이로보다는 홈런수에서 훨씬 앞서 있기 때문이다.

팔메이로의 올시즌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는 않는다. 통산 1000개의 장타수 달성도 눈앞에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1999시즌 47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켄 그리피 주니어(신시내티 레즈)에 이어 아메리칸리그 홈런 2위에 오른 것이 자신의 홈런순위에서 최고의 성적이었던 팔메이로는 아직껏 단 한 번도 홈런왕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의 장타력이 최고의 수준에 올라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는 분명하다. 이미 10년전이었던 1991년에 팔메이로는 49개의 2루타를 기록하며 2루타 부문에서 아메리칸리그 1위에 오른 적이 있다.

현재까지 통산 426개의 홈런과 475개의 2루타, 그리고 36개의 3루타를 기록하며 937개의 장타수를 기록하고 있는 그가 올시즌 내에 이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면 팔메이로는 역사상 24번째로 그리고 현역 선수로서는 배리 본즈와 칼 립켄 주니어에 이어 3번째로 이 기록을 달성하게 되는 선수로 남게 될 것이다.

같은 쿠바 출신에 똑같이 1964년생이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칸세코가 이팀 저팀을 전전하며 자신의 야구 인생의 마지막을 쓸쓸하게 맞이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팔메이로는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주인공으로 남기에도 아주 충분할 만큼 신화적인 기록 도전을 통해 자신의 야구인생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통산 2412개의 안타와 426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팔메이로는 머지 않아 역사상 4번째의 500(홈런)-3000(안타) 클럽 가입자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팔메이로는 은퇴이후 명예의 전당 헌액이라는 야구 선수로서는 최고의 영예를 위한 조건까지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쿠바 야구의 자존심을 지켜가는 것은 칸세코가 아니라 바로 팔메이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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