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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26) - 레지 잭슨 [1]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78년 어느 날, 뉴욕 양키스의 외야수 미키 리버스는 팀 동료 레지 잭슨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레지널드 매뉴얼 잭슨(Reginald Manuel Jackson), 당신의 퍼스트 네임은 백인의 것이고, 미들 네임은 스페인어식 이름이며, 성(姓)은 흑인의 것이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당신 자신조차 모르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소?"

물론 영어식 이름 중 흑인과 백인의 이름이 각각 따로 있을 리는 만무하다. 더구나, 리버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잭슨의 정식 성명은 '레지널드 마르티네스 잭슨(Reginald Martinez Jackson)'이며, 리버스는 감독 빌리 마틴(정식 성명은 '앨프리드 매뉴얼 마틴'임)의 미들 네임과 잭슨의 그것을 혼동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리버스의 말 속에 담겨 있는 오류에 대해 따지려 할 필요는 없다. 그의 언급은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누가 레지 잭슨이라는 인간에 대해 진정으로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던가? 그와 여러 해 동안 한 팀에서 활약한 동료들조차 그의 내면을 파악하는 것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단어는 과연 무엇인가? 화려함? 솔직함? 당당함? 친절함? 괴팍함? 호전성? 거만함? 변덕스러움? 그 어느 것도 그를 전적으로 대변하는 수식어는 되지 못한다.

다만, 그가 매우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데에만큼은 누구나 동의한다. 그에 대해 파악하려 애쓰는 것보다 차라리 그를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인물'로 간주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러한 면은, 리버스가 언급했듯 인종적 정체성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그는 물론 흑인이었지만, 흑인답지는 않았다. 그의 외모는 순수한 흑인의 그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으며, 흑인 동료들은 그가 백인들과 지나치게 친밀하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백인 여성들과 어울렸으며, 돈방석에 앉은 뒤로는 항상 금발의 미녀들을 거느리고 다녔다. 양키스 시절 동료들은 그를 이렇게 비꼬았다. "흑인으로서 살고 백인으로서 밤을 보낸다."

그는 때로는 승리의 상징이었고, 때로는 감독의 골칫덩어리였다. 1977년 6월 18일의 그는 클럽하우스의 암적 존재였고, 같은 해 10월 18일의 그는 위대한 영웅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7월 17일, 그는 또다시 클럽하우스의 암적 존재가 되었다.

그는 양키스 시절 팀 내에서 불화를 일으켰고 미움을 샀지만, 그가 팀에 화려한 성공을 가져왔을 때는 그 누구도 그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10월의 사나이(Mr. October)'라는 닉네임이 붙은 과정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1977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당시에는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는 5차전이 마지막이었음)에서 마틴 감독이 잭슨을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하고 폴 블레어를 우익수로 기용했을 때, 잭슨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양키스의 주장 서먼 먼슨은 비꼬는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빌리는 레지가 '10월의 사나이'라는 것을 모르나 보지." 1973년 월드 시리즈 MVP였던 잭슨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시절 '벅(Buck)'으로 불리곤 했으나, 특별한 닉네임이라 할 만한 것은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양키스는 결국 이 경기에서 승리하여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 잭슨이 역사적인 대기록을 수립한 뒤, 먼슨은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진정 위대한 '10월의 사나이'요." 이 때부터 이 유명한 닉네임은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분명 잭슨은 그 누구보다도 포스트 시즌과 인연이 깊었다. 그는 빅 리그에서 21시즌을 보내는 동안 무려 11번이나 포스트 시즌 무대를 밟았고, 6번이나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5시즌에는 월드 시리즈에서 활약했다(1972년 월드 시리즈에는 부상으로 결장했음). 그리고 그 중 두 시즌에는 월드 시리즈 MVP가 되었다. 그는 월드 시리즈 통산 장타율 부문 1위에 올라 있으며, 한 시리즈에서 5홈런을 날린 유일한 인물이다. 그가 가는 길에는 항상 성공이 따라다녔다.

정규 시즌에서는 그는 때때로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2,597삼진은 역대 최고 기록이며, 그는 필드에서 실책을 자주 저질러 감독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또한 그가 3할대의 타율을 기록한 시즌은 단 한 번뿐이다.

그러나 정규 시즌에서도, 그의 장타력은 가공할 위력을 자랑했다. 그는 총 4회에 걸쳐 홈런왕에 올랐으며, 3개의 다른 팀에서 각각 한 번 이상 홈런왕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다. 그의 563홈런은 그가 은퇴한 후 역대 랭킹 6위 자리를 13년이 넘도록 지켰다.

조 디마지오는 잭슨의 타격 스타일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잭슨은 미키 맨틀과 흡사한 타자이다. 그 두 명은 모두, 380피트짜리 홈런은 홈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타자들이다. 그들은 항상 500피트짜리 홈런을 날리고 싶어했다."

또한 그는 항상 많은 포볼을 얻었고, 잦은 삼진에도 불구하고 출루율 랭킹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들었다. 그는 리그 장타율 수위에 3번 올랐으며, 1969년과 1973년에는 OPS(출루율+장타율)에서도 1위에 올랐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내셔널 리그를 대표했던 인물이 자니 벤치와 피트 로즈라면, 같은 시기의 '주니어 서킷'에서는 잭슨이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던 것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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