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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중독증 편견 [1]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우리의 문제상황

한국에서는 ''정보화 문화''의 흐름을 타고 불과 몇 년 사이에 컴퓨터 보급과 인터넷 사용이 일본과 유럽을 넘어설 정도로 급속히 대중화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사이버 중독으로 의심되는 여러 부작용 사례들이 점차 가시화 되고 있다. 사이버 중독 장애Cyber Addiction Disorder에 대한 논의가 미국에서 시작된 지는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정신질환 분류 목록에 사이버 중독증이 표기된 것도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였다. 사이버 대상들과의 긴밀한 관계가 인간의 지적-정서적 발달에 이익이 되는지 독이 되는지의 진단은 아직까지 학자들 사이에 보편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인터넷의 생활화''는 현대인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고도산업사회에 접어든 현대의 상황에서 ''정보화 문화''는 거부하거나 외면하기 힘든 시대적 생활양식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보화 문화''에는 인간 정신을 경제중심적 가치관과 가상대상에 몰입하게 하는 偏向性편향성과 矮小性왜소성이 은폐되어 있음도 주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이버 사이트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종합적 전망을 정립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사이버 사이트에 중독적으로 집착하는 정신현상들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시도해 본다.

물음들

사이버 매체와 사이버 사이트들 자체에 보통사람들의 정신을 중독적 집착에 빠지게 할 만한 특별한 요인이 있는가? ''인간의 근본욕구들''이 사이버 사이트의 특정 성질들과 결합될 경우, 특별히 강력한 중독적 집착이 발생할 위험이 있는 것인가? "사이버 중독"은 혹시 현실사회가 지닌 제반 문제들(불공정성, 위선성, 억압성)로 인해 유발된 증상은 아닌가? 또는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하는 ''정보화 문화''의 脫도덕적 문제점들이, 사이버 사이트가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어떤 심리적 매력들과 〈우연히〉 결합될 경우, "사이버 중독"을 유발시키는 것은 아닌가? 이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먼저 현대 정보화 문화의 특성과 그것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정보화 사회의 특성과 인터넷의 매력들

''정보화 사회''란 정보의 생산과 교환을 통해 가치를 증식시키며, 정보들의 향유가 인간 생활의 중요한 수단과 욕망대상으로 부각되는 환경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정보''의 의미는 무엇인가? ''정보''란 ''진리''와 ''지식''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진리''란 "탁월한 가치를 지닌 실재 내지 그런 실재에 대한 인식"을 지칭한다. 서양 고대-중세 인간의 주요 관심은 완전한 존재(신, 진리)에 대한 인식에 있었다. 그들은 ''진리''에 내재된 ''완전한 가치''를 인식할 경우 그 완전성에 합일되어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어왔다. 이에 비해 16세기 이후 ''과학의 시대''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지향한다. 과학자들에게 ''지식''이란 보편성과 객관성을 지닌 ''명석판명한 관념'' 내지 ''감각적 자료''sense data를 지칭한다. 인간은 이런 자료들을 통해 자연에 대한 지배, 관리 및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자유를 추구해 왔다.

과학적 ''지식''이 실재에 대한 편견없는 ''정확한 인식''을 목표로 삼았다면, ''정보화 시대''의 ''정보''는 "과학적 지식 + 상품가치"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 경우, 정보가 지향하는 제1목적은,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아니라, 인간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켜줄 ''상품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된다. 정보화 사회 속의 개인들은 자신에게 심리적 쾌감과 사회적 이익을 주는 정보(''상품지식'')들에 대해, 그것의 진실성을 묻지 않는다. 즉 "나의 필요에 만족을 주는 어떤 정보가, 실재로 참인가/허구인가?"에 대한 엄밀한 탐구에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개인들은 단지 생활 속에서 획득한 정보가 내게 쾌감과 이익을 주는가 아니면 불쾌감과 손해를 주는가에 관심을 쏟게 된다.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제도가 결합되어 발현된 "정보화 문화"의 생활맥락에서, "정보"에 내재된 이러한 의미와 성질로 인해, 현대인의 정신은 자신도 모르게 경제적 가치관과 가상적 대상들에 적응할 수밖에 없게된다.

정보화 문화환경은 현대인에게 전통가치관을 대체하는 새로운 가치관점 및 지식관점을 지니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환경의 핵심에 바로 "인터넷"이라는 ''가상 현실''이 존재하며, 현대인의 삶은 인터넷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이트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현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특히 ''중독적 집착''과 연관된 인터넷의 특성들은 무엇인가?

미국의 사이버 심리학자 King에 의하면 인터넷은 사용자들에 다음과 같은 매력을 제공한다. 인터넷에서 익명의 타인들과의 상호 교류는 "자극적이고 보상적"이다. 가령, 이메일 토론, 채팅 룸, 동아리 게시판은 실재적인 現前 없이도 가상공간에서 일종의 사회적 접촉을 경험하게 한다. 인터넷은 넓은 범위의 낯선 개인들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접촉할 수 있게 한다. 인터넷상에서 개인은 자신이 풀기 힘든 私的 문제들에 대해 익명의 多數로부터 〈정서적 지지〉와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또한 〈잠행〉하여 실생활의 토의에서 얻기 힘든 내밀한 정보들에 위험부담 없이 접근할 수도 있다. 따라서 소외된 삶을 사는 현대사회에서 〈넷〉은 〈사회적 삶을 대리하는 상호 접촉의 활기찬 원천〉이 될 수 있다.

또다른 사이버 심리학자 Suler에 의하면, 인터넷은 사용자들의 정체성과 내적 관심들, 태도들을 사이버 상의 대상관계 속에서 다중적으로 발현시키기 때문에, 그 동안 감추어져 왔던 자신의 인격성들을 自己對面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인터넷은 생리적 욕구로부터 호기심, 자기성취, 환경지배, 자기존중, 자기실현 욕구에 이르는 다양한 인간욕구들을 충족·발달시킬 수 있는 최초의 "상호 인격적인 매체"이다. 따라서 인터넷은 배움과 창조성과 자기표현의 아울렛이다. 또한 가상공간들에서의 지위와 권력은 실재 삶과 매우 다른 방식으로 얻어지며, 평등하게 느껴진다. 인터넷 사이트들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으며, 안전하고 빠르고 새로운 관계들을 형성하게 한다.

이러한 인터넷의 장점들로 인해, 현실세계 속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개인들은 사이버 대상들에 빠져들게 된다. 그들에겐 ''사회적 현실''보다 ''사이버 세계''가 훨씬 가치 있는 현실로 느껴지기에, 사이버 대상들에 대한 집착은 점점 심화된다. 그런데 사이버 사이트들은 과연 사용자 일반을 병리적 중독증상에 빠져들게 하는가?

Suler는 인터넷과 연관된 병리적 증상들은 인터넷 자체만의 문제이기 보다, 개인의 유년기 상처trauma들에서 기인된 것으로 추정한다. 비록 과도한 인터넷 사용은 현실생활에서의 여러 가지 ''상실''을 유발하지만, 인터넷은 타인들과의 상호작용을 내포하므로, 쾌락을 제공하는 다른 대상들보다 본래적으로 중독적인 것은 아니다.

객관자료화될 수 있는 심리특성 만을 다루는 심리학의 관점은 사이버 매체의 특성과 중독에 빠지는 (무의식적) 심리 사이의 연관관계를 심층적으로 규명할 이론적 기반이 취약하다. 따라서 필자는 정신분석학의 관점들에 의거하여 인터넷 사이트에 중독적으로 집착하게 되는 요인들을 분석할 것이다.

이창재 / 광운대 겸임교수
자료제공 : emerge새천년(http://emerg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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