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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로 `테크놀로지컬 건망증' 증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휴대폰과 개인휴대단말기(PDA) 등 디지털 기기 사용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인간의 기억력이 점점 감퇴하고 있다.

1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전화번화나 생일 등을 기억하는 데 있어 자신의 기억력보다는 디지털 기기에 더욱 의존함으로써 `과학기술에 의한 건망증(technological amnesia)''에 걸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카운티 검사장실 여직원인 델린 월트립은 대뇌피질이 판검사와 법원서기, 가족, 친구들의 열자리 전화번호 수백개로 가득차 있으나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러나 월트립은 최근 한 전화번호가 급히 필요해 기억을 더듬었으나 좀처럼 떠올릴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승용차로 달려가 휴대폰을 꺼내 그 번호를 찾아내야했다.

월트립은 "정말 미치게 만든다"며 "어떤 날은 친구 전화번호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월트립처럼 휴대폰, 포켓 컴퓨터, 스피드 다이얼, 전자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디지털 체계 의존도가 높아지면 테크놀로지컬 건망증 현상이 나타나는 것보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부모 주소나 배우자 직장 연락처 등 평범한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정보들이 머릿속이 아닌 휴대폰이나 휴대용 개인 디지털보조기에 입력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사용중인 1억여개의 휴대폰 대부분이 스피드 다이얼링과 번호누르기제거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800만개의 PDA는 생일, 기념일, 중요 회의날짜를 챙겨준다. 웹사이트들도 이용자들에게 갖가지 호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전화다이얼을 돌리기 위해 굳이 애쓰며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인간의 기억력은 체스(서양 장기)의 대가가 수천개의 기보를 외우고 율법학자가경전 구절 하나하나를 암송하는 것을 비롯해 보통 사람들조차도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담고 있을 만큼 여전히 위대하다.

그러나 디지털 기기로 인해 과거 머리 속에 저장됐던 정보들을 잊는 사람들이늘고 있다.

지금까지 테크놀로지에 의한 기억상실은 단지 일화정도에 불과했으나 학자들은이런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일각에선 이를 `인간과 기계의 진정한 결합(the true melding of man and machine)''으로 보려는 시각도 있다.

심리학자 케네스 거겐은 "우리는 항상 기억을 머릿속에서 전달되는 어떤 것으로보아왔으나 지금은 어떤 장치로 우리 외부에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아가 테크놀로지 속으로 함몰되기 시작하면서 인간과 기계는 지금 거의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권오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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