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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세계은행’ 녹색기후기금 인천 송도에 사무국 유치 성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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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호 01면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의 인천 송도 유치가 확정된 20일 이명박 대통령(가운데)이 송도컨벤시아 기자회견장을 방문해 송영길 인천광역시장(오른쪽),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활짝 웃고 있다. 이번 선정 결과는 다음달 말 카타르에서 열리는 제1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최종 인준될 예정이다. [인천=연합뉴스]

‘환경 분야의 세계은행(WB)’으로 불리는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 GCF) 사무국이 인천 송도에서 문을 열게 됐다. 유엔 산하인 GCF는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1000억 달러(약 110조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는 ‘매머드급’ 국제금융기구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지역에 이런 규모의 대형 국제기구가 들어선 적은 없다.

GCF는 20일 인천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2차 이사회에서 이사국 24개국의 투표를 통해 사무국 유치 도시를 인천 송도국제도시로 결정했다. 오전 10시쯤부터 2시간가량 진행된 투표에서 인천은 독일 본과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유럽은 독일, 아프리카는 한국 식으로 대륙별 표 대결 양상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륙 간 협력관계를 도모하는 차원에서 정확한 투표 결과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투표는 인천과 본을 비롯해 제네바·멕시코시티 등 6개국 유치 신청 도시를 놓고 득표율이 가장 낮은 곳을 하나씩 차례로 탈락시키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이번 선정 결과는 다음 달 말 카타르에서 열리는 1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최종 인준된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2월 완공되는 송도의 국제기구 전용빌딩인 ‘아이 타워(I-Tower)’에 GCF 임시사무국이 단계적으로 이전한 뒤 내년 중 정식 사무국이 출범한다. 초기 상주 직원은 500명으로 추정된다.
GCF는 2010년 말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16차 당사국 총회에서 설립이 승인된 신생 국제기구다. 2020년에 연간 1000억 달러의 장기재원을 조성하는 게 목표다. 내년부터 2019년까지의 연간 기금규모는 11월 카타르 총회에서 결정된다. 향후 기후변화 분야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GCF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3대 국제금융기구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GCF의 기금 조성에 비관적인 시각도 많다. 지난 6월 한국개발연구원과 캐나다 국제거버넌스혁신센터(CIGI)가 서울에서 공동주최한 국제회의에서 베리 캐린 CIGI 선임연구위원은 “유럽연합(EU)과 미국의 재정상황으로 미뤄볼 때 선진국이 연간 1000억 달러의 재원을 모으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예고 없이 유치확정 기념 기자회견장을 찾아 “앞으로 GCF를 통해 100년, 200년 인류 역사에 기여하고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한국이 돼야 한다”며 “대한민국 역사 이래 최대 국제기구가 들어와 전 국민이 아주 큰 축복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2차 이사회를 앞두고 친분이 있는 정상들과 정상회담 또는 전화통화를 통해 지지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경제 효과는 초대형 글로벌 기업 하나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GCF 사무국이 주최하는 국제회의와 행사로 관광·숙박·교통 등 서비스 산업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GCF 유치에 따른 경제효과는 연간 3800억원에 달한다. 평균 연봉이 1억원 이상인 상주직원 500명을 비롯해 내국 고용인, 국제회의 참가자,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지출 효과를 합친 금액이다. 연간 1915명의 고용유발 효과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GCF 유치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특히 지난 19일 유엔총회에서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된 데 이은 쾌거다. 정부는 기후변화 분야 원조 규모에서 세계 2위인 독일을 제치고 유치에 성공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전까지 한국이 유치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대규모 국제회의나 올림픽·월드컵 등의 행사는 경제효과가 단기적인 데 비해 국제기구 사무국 유치의 효과는 사실상 영구적이라는 평가다.

국제기구 유치 후진국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도 크다. 여태껏 한국이 유치한 국제기구는 총 32개이지만 대부분이 소규모의 지역센터 규모였다. 그중 큰 기구가 정부가 1994년 유치한 국제백신연구소(IVI) 정도지만 GCF의 규모와는 비교 자체가 힘들다.

유치 과정에서 한국은 각종 악조건을 이겨낸 역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17차 당사국 총회에서 유치 의사를 공식 발표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다수의 국제기구 유치 경험이 있는 독일·스위스보다 열세란 평가를 받았다. 정부 고위관계자조차 올 초 “유럽세가 강해 한국의 유치 가능성은 많아야 30%”라고 말할 정도로 정부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에 몰려 있는 국제기구의 지역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것이 이사국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행운도 뒤따랐다. 유치도시를 결정한 2차 이사회가 송도에서 개최돼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GCF 2차 이사회 개최 직전인 16일 서울에서 열린 한-아프리카 장관급 경제장관회의(KOAFEC)에서 아프리카 이사국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도 역전극에 큰 힘이 됐다. 박 장관은 “천시(天時), 지리, 인화의 3박자가 갖춰져 성공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지구촌의 화두인 기후변화와 녹색성장의 허브(Hub)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로도 평가된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 주도로 만든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한국 녹색기술센터와 더불어 그린 트라이앵글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인천은 송도국제도시를 발판으로 지역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천발전연구원(IDI)은 GCF가 인천 지역경제에만 연간 1900억원의 경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했다. 박 장관은 “최근 세계은행이 개설키로 한 한국사무소가 송도에 유치될 수 있도록 세계은행과 적극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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