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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토종 브랜드, 뉴욕 패션 피플 단숨에 사로잡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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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호 19면

1 한국 토종 두 브랜드의 옷을 입힌 마네킹 2 파티장에 모인 패트리샤(가운데 안경 쓴 이)와 모델들 3 K팝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파티 참석자들 4 미니사이즈로 만든 비빔밥 5 뉴욕 스타일의 소주 칵테일 6 패트리샤와 함께한 보끄레머천다이징 한정석 이사(왼쪽)와 MK 트렌드 김문환 부사장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의상을 총괄해 세계적 스타일리스트로 뜬 패트리샤 필드. ‘섹스 앤 더 시티’를 통해 마놀로블라닉, 지미추 구두를 유행시켜 뉴욕 패션계에선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그가 토종 한국 브랜드 의상을 입고 파티장에 나타났다. 71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화끈한 자태를 뽐냈다.

뉴욕 ‘K-패션 센세이션’을 가다

패트리샤 필드의 선택, 버커루·모린꼼뜨마랑
11일(현지시간) 저녁 뉴욕 패션계 인사들이 가장 즐겨 찾는 첼시의 드림호텔 옥상 바. 멀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미드타운의 빌딩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파티장엔 이미 국산 청바지 브랜드 ‘버커루’를 입은 남성 모델들과 여성드레스 브랜드 ‘모린꼼뜨마랑’을 입은 모델들이 K팝 음악에 맞춰 흥을 돋우고 있었다. 두 브랜드 의상을 입은 마네킹도 곳곳에 서 있었다. 이날 파티는 한국패션협회가 주최하고 지식경제부가 후원했지만 기획은 필드가 직접 맡았다. ‘K-패션 센세이션’이란 파티 이름도 필드가 지었다. 패션브랜드 론칭 파티에 한식과 소주 칵테일은 물론 K팝까지 접목시킨 것도 그의 제안이었다. 필드는 “음악, 패션, 디자인은 다 예술이란 가족의 일원”이라며 “이 모든 요소를 한데 아우르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패션협회는 그동안 한국 토종 브랜드를 뉴욕 시장에 진출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손에 잡히는 성과를 얻기가 힘들었다.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늘 좋았지만 현지 백화점이나 부티크 바이어와 연결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고민하던 원대연 패션협회 회장은 글로벌 브랜딩 회사 한글로벌의 한영아 대표를 떠올렸다. 한 대표는 성주그룹이 사들인 독일 명품 브랜드 MCM을 뉴욕 삭스핍스·블루밍데일 백화점에 입점시킨 데 이어 명품 서적회사 애슐린의 아시아총괄대표를 맡고 있는 뉴욕통. 제일모직 대표였던 원 회장은 한 대표를 대구 계명대 교수 시절부터 눈여겨 보고 각별하게 지내왔다.

한 대표는 원 회장에게 기발한 제안을 했다. 패트리샤 필드를 전면에 내세우자는 아이디어였다. 유명 백화점 바이어와 현지 언론을 필드가 여는 파티에 초대해 토종 브랜드를 소개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름 복안이 있었다. 뉴욕에 있는 동안 필드와 끈끈한 친분을 쌓아놓은 데다 필드 자신이 ‘코리아 매니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대표의 설명을 들은 필드는 흔쾌히 ‘OK’했다. 게다가 초대할 VIP 손님 명단도 직접 만들었다. 필드의 ‘초대장’이 날아가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 아무리 연락해도 꿈쩍도 하지 않던 버그도프굿맨, 블루밍데일, 메이시스 등 럭셔리 백화점의 바이어는 물론 뉴욕타임스, 뉴욕포스트, 엘리, 보그 등의 기자들이 앞다퉈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답해 왔다.

필드는 뉴욕에 소개할 브랜드를 직접 고르겠다며 한국까지 날아갔다. 5개 후보 중 그가 고른 건 버커루와 모린꼼뜨마랑이었다. 2004년 동대문에서 출발한 버커루는 프리미엄 청바지로 국내 시장에선 이름이 알려졌지만 해외 시장 개척엔 애를 먹었다. 버커루를 보유한 MK트렌드 김문환 부사장은 “라스베이거스 패션박람회에 매년 참가했지만 쇼 디렉터와 통화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런 열의가 필드의 눈에 들었다.

필드는 버커루와 매치시킬 브랜드로 여성스러운 디자인과 파스텔톤 색상이 돋보이는 보끄레머천다이징의 모린꼼뜨마랑을 골랐다. 1991년 설립된 보끄레머천다이징은 온앤온, 올리브데올리브, 더블유닷(W.), 라파레뜨 등 여성의류 브랜드를 보유한 중견 패션회사다. 두 브랜드를 고른 필드는 모린꼼뜨마랑의 드레스를 입은 ‘착한 아가씨(Good Girl)’가 버커루를 입은 ‘나쁜 남자(Bad Boy)’를 사랑한다는 스토리를 파티 컨셉트로 잡았다. 그는 초대손님에게 협찬 의상을 보내 남성은 청바지, 여성은 드레스를 이날 입고 오도록 주문했다. 뉴욕 패션 피플이 직접 한국 브랜드 의상을 입은 모습을 백화점 바이어들에게 보여주자는 취지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손님이 찾는 바람에 책정된 파티 비용을 훨씬 초과해 주최 측이 당황했을 정도다. 버그도프굿맨 백화점 바이어 아이샤 베넷은 “미국 디자이너, 이탈리아 디자이너에 식상한 뉴요커들에게 한국 브랜드는 독특하고 참신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브랜드가 뉴욕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러브콜을 하기 때문에 이를 다 볼 수 없다”며 “오늘은 패트리샤 필드가 직접 골랐다는 말을 듣고 보러 왔다”고 덧붙였다.

유명 백화점 바이어 앞다퉈 참석
MK트렌드 김 부사장은 “우리가 그렇게 애태우던 라스베이거스 패션박람회 쇼 디렉터가 오늘 먼저 다가와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하더라”며 “뉴욕 시장에 진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모델들도 호기심을 보였다. 남자 모델 토바이어스 로이스는 “버커루의 청바지 커트가 아주 마음에 든다”며 “당장 입고 나가도 뉴욕 스타일에 뒤지지 않을 만큼 힙하다”고 말했다. 흰색 모린꼼뜨마랑 드레스를 차려입은 이디 거리는 “패트리샤 필드가 직접 스타일링해 준 옷”이라며 “칵테일 파티에 꼭 입고 가고 싶다”고 웃었다. 파티는 밤 10시가 가까워 파했다. 여장 남자 모델 리오 구구는 “디자인도 마음에 들지만 오늘 맛본 비빔밥도 맛있었고 K팝도 신났다”며 “패션쇼 무대보다 이런 파티를 통한 입소문이 뉴욕 시장에선 더 먹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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