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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기고] '올해 사랑 받을 책은?' 출판 키워드 5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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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인간 '이브'의 탄생 소문에서 보듯 기술로 인한 공포가 이어지고 있는 한편 초고속 통신망이나 인터넷과 같은 신기술을 활용해 자신의 능력만 키우면 '수퍼 개인'이 되는 새로운 신화가 시작된 시대가 2003년 우리 사회다.

하지만 벤처열풍, 세계화 버블(거품) 등 디지털 기술이 몰고온 빛과 그늘, 은총과 저주를 함께 경험한 대중은, 앞으로 자신이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책읽기 등을 통해 기본기를 갖춰야 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새롭게 인식했다.

그러나 대중이 찾는 책은 더 이상 아날로그 시대의 책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올해에 대중은 어떤 유형의 책을 추구할 것인가. 그리고 콘텐츠 산업인 출판업은 어떻게 이런 변화의 흐름에 신축자재하게 대응해야 할지를 5개의 키워드로 정리해보는 작업이 새해 벽두에 의미가 없지 않을 것이다.

◇자기성찰로서의 책=서양중세의 촌락과 같은 공동체는 이미 사라졌다. 과거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된 개인은 국가와 사회보다 자신을 중시한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이 유리한 방향에서 입장을 선택해 자기 내부에서조차 가치관이 충돌하는 모습을 자주 노출한다. 최근 대중은 집단보다는 개인, 이념보다는 일상, '회사 안'이 아닌 '회사 밖'을 중시하는 흐름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따라서 올해에도 역사나 경제, 인간관계 등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사고하는 책들이 더욱 선택받을 것이다. 또 불과 몇년 전만 해도 국내 독자들이 낯가림을 했던 달라이 라마.틱낫한 등 동양종교 지도자들의 책 인기가 지속될 것이다.

◇내러티브 성격의 구현=과거에 독서는 지적 권위를 상징하던 대학이나 양식을 갖춘 시민에게는 일종의 규범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취미로서의 독서만 존재할 뿐 규범으로서의 독서는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더구나 탈활자 세대인 청소년들은 텍스트에서 의미를 찾는 개인의 능력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지금까지 이들을 책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영어학습서나 과학적 지식책 등 단순히 정보를 다루는 책에서마저 서사적 구조가 도입됐다. 올해에 이 추세는 더욱 강화돼 어린이적 감성이 도입되고,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잔잔한 감동을 주며, 이야기를 연속적으로 풀어주기 위한 장치로서 책의 여백마저 신중하게 배려된 스토리텔링의 책들이 더욱 인기를 끌 것이다.

◇퓨전으로서의 책=최근 영혼과 육체, 이승과 저승마저 뛰어넘는 우주론적 고뇌 수준의 상상력을 내놓지 못하고 작가 자신의 지난 추억을 그럴 듯한 존재론적 고민으로 적당히 윤색해 내놓은 문학작품들은 급격히 퇴조했다.

이에 반해 이 달 말에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오를 것으로 보이는 '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동안 도저히 결합될 것 같지 않던 픽션(허구)과 팩트(사실)마저 하나로 결합해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최근 문학과 예술, 인문과학과 자연과학, 교양(정보)과 오락, 단행본과 잡지, 학술과 실용 등 이질적인 상상력들이 하나로 결합하는 현상이 더욱 발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지금까지 퓨전화를 보여주는 책들은 주로 번역서였지만 올해에는 국내서도 서서히 늘어날 것이다.

◇실버와 청소년 세대의 등장=지난 몇 년간 출판시장에서 강력한 주도권을 행사한 세대는 지금의 40대다. 40대는 그동안 인문서와 자식들의 책인 아동서를 동시에 키웠다.

더 이상 생존에만 급급해하지 않는 그들은 미래를 위한 비전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에 가능성을 보인 실버출판은 올해 크게 시장을 키울 것이다.

◇국화빵에서 오브제로=텔레비전과 같은 일방향의 미디어에서는 수동적이었던 대중은 쌍방향의 네트워크에서 매우 능동적이다. 네트워크에서 언제든 '전자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획일성을 거부하고 개성화를 추구한다.

더구나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무장된 유비쿼터스형의 새로운 기기가 곧 도입되기 시작해 인간의 오감을 마구 뒤흔들어댈 것이다. 이런 시대에 책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국화빵처럼 획일화된 형식의 용기를 거부하고, 한 권의 책 자체가 하나의 생명을 지니면서 그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지닌 오브제화된 수준이어야만 대중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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