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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샤갈 … 1000억 규모 작품 1300만원에 빌려온 전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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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피카소 ‘누드와 앉아있는 남자’

지난 7일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에서 우고 차베스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전북도립미술관 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반대의 결과가 나왔더라면 지난 1년2개월간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피카소·샤갈·마네·로트레크·앤디 워홀 등 거장들의 작품 130여 점을 빌려 19일부터 내년 2월까지 개최하는 ‘세계미술 거장전’이 바로 그 공든 탑이다. 미술관 직원들이 지구 반대편 나라의 선거 결과에 마음 졸인 사연은 이러하다.

 전북도립미술관은 ‘2012년 전북 방문의 해’를 기념하는 특별전시회를 지난해 8월부터 추진했다. 예산이 많지 않은 지방 미술관이 해외 거장들의 작품을 유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베네수엘라가 1970~80년대 오일머니로 세계적 걸작을 많이 사들였다는 정보를 접한 뒤 올 초부터 문을 두드렸다. 처음엔 냉랭한 반응이 돌아왔다. “작품 한두 점을 외국에 대여해 준 적은 있지만 100여 점을 한꺼번에 해외 반출하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이유였다.

 미술관 측은 포기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 정부·미술 관계자들에게 “두 나라가 그동안 다져 놓은 경제협력을 문화교류로 확대하고, 이를 통해 한층 우의를 두텁게 하자”는 내용의 e-메일을 수백 통 보냈다. 국제전화를 통한 설득과 애원도 수없이 반복했다. 이흥재(58) 관장은 두 차례 현지에 가 “한국인은 베네수엘라에 대해 미인이 많은 나라란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미인뿐 아니라 걸작 미술품이 많은 문화대국임을 알리자”고 호소했다.

 마침내 올 8월 “당신들의 열정에 감동했다”며 오케이 사인이 왔다. 더욱 놀라운 건 파격적인 대여료였다. 그림 한 점당 100달러에도 못 미치는 1만2000달러만 받겠다는 것이다. 이들 작품 총액은 1000억원대로 추정된다. 미술관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대여료로 따지자면 200만~300만 달러는 내야 하는데 100분의 1도 안 되는 돈으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이번엔 “국가재산을 헐값에 보낼 수 없다”는 베네수엘라 야당의 반대가 걸림돌이었다. 야당 후보가 대선에서 이길 경우엔 전시회가 무산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거는 집권 여당의 승리로 돌아갔다. 작품을 실은 컨테이너는 15일 전북도립미술관에 무사히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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