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바이오산업 강국 되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년간 우리나라에서는 바이오 열풍이 불었다. 지난해 10월 대통령.국무총리와 10개 부처 장.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바이오산업 발전 방안 회의가 있었고, 지난 2월에는 올해 바이오 예산을 총 3천2백여억원으로, 2년 전 대비 1백% 증가시킨다고 발표했다. 민간 투자열기도 뜨겁다.

그러나 이러한 바이오 열기 속에 정작 중요한 부문이 잊혀지고 있으니 그것은 전세계 바이오 시장 규모의 각각 50%, 20% 정도를 차지하는 의약품과 식품에 관련된 인허가 법규와 그 절차다. 인간 지놈 프로젝트 결과의 발표로 전세계가 흥분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도 이것이 특히 의약산업에 미칠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선진국에서와 같이 사람에게 투여하는 의약품에 대해 적절한 규정을 만들어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를 거치게 하고 있다.

인간에게 직접 투여하는 제품이니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를 관장하는 주무부처는 식품의약품안전청.보건복지부 등과 관련 평가기관들이다. 따라서 모든 의약품은 그것이 어떻게 개발됐든 이곳에서 절차를 밟아 허가를 받고 수년 동안의 임상시험을 거쳐 최종평가를 받아 시장에 나가게 된다.

지난 2년간 우리의 관련 부서들은 국내에서 개발된 물질을 신약으로 허가하는 등 많이 발전했으나 아직도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전문인력 부족과 이에 따른 담당 공무원들의 수동적 태도다.

그간의 직.간접 경험을 요약하면, 관계 공무원들의 주요 업무가 전문적인 데이터를 평가하는 것인 데 비해 1인당 업무량과 담당분야가 턱없이 많고, 근무강도와 책임의 막중함에 비해 급여가 낮다 보니 고급인력을 채용하기 어려우며, 이런 상황은 전문성 부족과 자신감 결여로 연결돼 규정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려는 태도가 있다.

더구나 관련 공무원들은 기업이 무엇인가를 속이고 있다고 전제하며 그들을 대하고, 기업은 담당자가 전문성도 없고 알려는 노력도 안하면서 고압적 자세를 가진다고 생각해 상호 불신이 매우 크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오 선진국 진입은 어려운 일이다.

물고기의 질은 자기가 사는 물에 의해 결정되는데, 우리 시민과 언론의 태도는 일선 공무원들을 더욱 소극적으로 만든다. 신약개발은 임상시험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에 모험이 따른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유전자치료제 임상시험 중 사고가 났을 때 거의 모든 미국 언론은 사망한 18세 소년을 신약 개발과정에서 스러져간 ''영웅'' 으로 보도했고 그의 부친도 냉정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어느 공무원도 좌천되거나 파면되지 않았다. 처벌대상 파악보다는 철저한 원인분석과 시스템 개선이 있었다.

바이오 시장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신의약품의 개발은 시민.언론.기업.정부.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이 중에서도 인허가 관련 부서의 전문인력 확보와 합리적이고 유연한 공무원의 태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약개발 최종단계인 제품화의 생살여탈권을 가진 관계부처의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정부가 부르짖는 ''바이오 강국'' 의 꿈은 예산만 잡아먹는 헛구호가 될 것이다.

김선영 서울대 교수 ·유전공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