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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과 엉덩이와 눈물과 소문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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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활발해진 역사 대중화 운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16세기 중엽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실제 일어났던 기상천외한 재판사건을 재구성한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양희영 옮김, 지식의풍경)이나 18세기 인쇄공들의 고양이 대학살을 다룬 논문 등을 수록한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조한욱 옮김, 문학과지성사) 등으로 흔히 ‘미시사’, 혹은 ‘신문화사’라고 부르는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본격 저술에 속하는 이 영역은 아직 활발하게 출판되는 편은 아니다. 대신에 다소 변형된, 혹은 그 경계가 광범위해진 ‘신문화사’라고 할 수 있는 가벼운 저술들은 이제 대형서점의 한 코너를 형성할 만큼 활발하게 출판되고 있다.

기묘하고 이상한 것들의 역사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이기웅·박종만 옮김, 까치)와 파울 프리샤우어의 『세계풍속사』(이윤기 옮김, 까치) 등이 주도한 이 흐름은 1990년대 들어 빠스깔 디비의 『침실의 문화사』(편집부 옮김, 동문선), 쟝 뤽 엔니그의 『엉덩이의 역사』(임헌 옮김, 동심원), 줄리 L. 호란의 『1.5평의 문명사』(남경태 옮김, 푸른숲), 알레브 라이틀 크루티어의 『물의 역사』(윤희기 옮김, 예문), 존 우드퍼드의 『허영의 역사』(여을한 옮김, 세종서적), 앨리스 K.의 『지옥의 역사』(이찬수 옮김, 동연), 조르주 뒤비 등이 편집한 『여성의 역사』(권기돈 외, 새물결), 매릴린 옐롬의 『유방의 역사』(윤길순 옮김, 자작나무), 안 뱅상 뷔포의 『눈물의 역사』(이자경 옮김, 동문선) 등이 출판되면서 인문학의 독특한 분야로 자리잡았다.

이런 흐름은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져 한스 J. 노이바우어의 『소문의 역사』(박동자 외 옮김, 세종서적), 자크 르 고프 등이 편집한 『고통받는 몸의 역사』(장석훈 옮김, 지호), 게르트 호르스트 슈마허의 『신화와 예술로 본 기형의 역사』(이내금 옮김, 자작), 에드워드 챈슬러의 『금융투기의 역사』(강남규 역, 국일증권경제연구소) 등이 출간됐다. 여기에 ‘해리 포터’ 시리즈의 조앤 롤링이 쓴 가상의 책 『퀴디치의 역사』(최인자 옮김, 문학수첩 리틀북스)도 살짝 끼워 넣을 수 있을 듯하다.

베를린 대학에서 일반문예학 및 비교문예학을 전공한 한스 J. 노이바우어가 소문에 대해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노이바우어의 말마따나 “소문은 이야기의 성공에 관해 이야기해주는 동시에 이러한 성공의 요인과 신호에 관해”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원전 413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 함대가 시라쿠사의 항구에서 전멸됐다는 소문을 옮겼다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문을 당한 한 이발사 얘기에서 최근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간의 스캔들의 전파 경로까지 인류 역사 속에서 소문이 어떤 역할을 행했는지 살폈다.

소문이 크게 문제가 되는 경우는 전시체제다. 그래서 전시체제가 되면 소문의 확산을 방지하는 ‘루머 클리닉’이 생긴다고 노이바우어는 말한다.

‘소문학’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루머 클리닉의 등장은 소문을 일종의 바이러스로 보는 견해를 낳는다. 소문은 모든 사람들을 감염시킨 뒤에는 저절로 소멸하기 때문이다.

또 ‘R〓ia’라는 소문 공식도 있다. 소문의 강도(R)는 정보의 중요성(i)에 상황의 불확실성(a)을 곱한 것과 같다. 소문의 역사는 결국 정보 통제의 역사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미시사, 혹은 신문화사를 체계화한 프랑스 아날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자크 르 고프 등 22명의 역사학자가 참여한 『고통받는 몸의 역사』는 질병·환자·병원 등을 역사적으로 따져 들어간 책이다.

“아날 학파의 역사 서술 방법론의 기조를 지니고 있다”는 옮긴이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 책은 의학사를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의학과 관련한 인간의 삶을 역사적으로 복원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질병의 역사가 아니라 고통의 역사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질병은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이름 붙인 추상적 총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장 샤를 수르니아의 결론이다.

질병과 맞서 싸워온 인간의 이 기나긴 역사는 다시 말해 질병을 분류하고 치료 체계를 세워온 역사에 다름 아니다. 질병이 추상적 총체라면 치료술은 구체적 방법이다.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질병의 역사가 아니라 고통과 치료술의 역사가 존재하는 셈이다. 한편 이 책에서 아날학파의 진면목을 일부라도 느끼고 싶다면 「루이 14세의 최후」 같은 글을 보면 된다.

『신화와 예술로 본 기형의 역사』 역시 기형학(teratology)의 관점에서 인간이나 동물에게 나타날 수 있는 선천성 기형의 역사를 다루되 그 대상을 신화와 예술 분야에 한정했다.

이 책은 초기 문명 이래 조각·설화·그림 등에 나타난 기형들을 역사적으로 개관한 뒤, 난쟁이와 거인, 이중체(몸이 붙은 기형), 사이렌(하반신 기형), 키클로프스(외눈박이), 다유방증(유방이 여러 개인 기형), 자웅동체, 동물기형 등 구체적인 양상을 검토해나간다.

글을 쓴 게르트 호르스트 슈마허가 해부학 교수라 단순히 신화적 도상이라고 이해됐던 기형에 대한 해부학적 소견을 덧붙였고 조금 끔찍하긴 하지만 구하기 힘든 도판이 많아 흥미롭다.

이 책은 그간 문학적, 신화적 상징으로만 여겼던 기형이 어떻게 의학적으로 의미를 지녀가는지 탐색한다. 이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화와 예술 속의 상징들이 어쩌면 실재했을 수도 있다는 놀라운 유추를 이끈다. 예컨대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기형이 많았기 때문에 신화 속의 키클로프스 역시 실제 외눈박이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말한 책들이 다소 인문학적 성격을 띤다면 에드워드 챈슬러의 『금융투기의 역사』는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금융투기에 접근한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금융투기의 역사는 자유로운 자산이전을 보장하는 로마법이 형성된 기원전 2세기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본격적인 역사는 “일확천금은 ‘투기 거래’를 통해 이뤄진다”는 문장이 담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되는 18세기 직전부터다. 이 시기에 최초의 조직적 투기라고 할 수 있는 주식회사 설립 붐이 일어난다.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
챈슬러가 금융투기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까닭은 역사를 통해 오늘의 교훈을 얻기 위함이다. 이 책에 실린 역사적 사례들은 현재 인터넷을 둘러싼 ‘버블’, 혹은 ‘신경제’를 고찰하게 만든다.

오늘날과 흡사하게도 자동차와 라디오가 쏟아져 나오던 1920년대 미국과, 철도투기가 시작되던 1840년대 영국에도 이제 세계를 하나로 연결할 ‘신경제’의 도래에 대한 부푼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1920년대 미국의 투기 열풍은 대공황으로, 1840년대 영국의 투기 열풍은 중산층의 파산으로 끝났다. 이렇게 비관적으로 고찰하면서도 지은이는 양가적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장미빛 미래에 현혹돼 많은 사람들이 파산했음에도 투기 뒤에는 경제의 발전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어쩐지 곧이 곧대로 들리지는 않는다.

이런 책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의 조앤 롤링이 ‘케닐워디 위스프’라는 가상의 저자 이름으로 펴낸 『퀴디치의 역사』(문학수첩 리틀북스)라는 책도 이 대열에 넣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책은 전적으로 조앤 롤링의 창작품이지만, 마법사들의 경기인 ‘퀴디치’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잘 설명해놓았다.

이 책에 따르면 퀴디치의 기원은 10세기 스웨덴에서 열린 빗자루 경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던 게 돼지오줌통을 사용하는 놀이로 변천했고 14세기부터 지금의 퀴디치 초기 형태가 정착됐다. 퀴디치는 빗자루를 타고 다니면서 상대편 골대에 공을 넣는 경기인데, 1674년 퀴디치 리그가 탄생한 이래 숱한 일화를 낳았다.

한편 시간이 흐르면서 퀴디치는 전세계로 확산됐으나 빗자루 대신에 양탄자를 즐겨 타는 아시아 지역에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크게 전파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표면적으로 볼 때, 조앤 롤링의 가상 서적 『퀴디치의 역사』와 『신화와 예술로 본 기형의 역사』 등의 책 사이에 거리는 그다지 멀어보이지 않는다. 가벼운 ‘신문화사’가 출판계에서 널리 환영받는 원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조앤 롤링이 만든 이야기와 역사학자, 혹은 기자들이 찾은 이야기는 모두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신문화사’에 대한 출판계의 관심은 계속 이어질 듯하다. 문제는 ‘이 신문화사와 우리 역사가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가’다. 역사문제연구소의 『전통과 서구의 충돌』(역사비평사), 한국고전문서학회의 『조선시대 생활사』(역사비평사), 김진송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현실문화연구) 등은 이런 시도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다.(김연수/리브로)


■ 소문의 역사

■ 고통받는 몸의 역사

■ 금융투기의 역사

■ 기형의 역사

■ 퀴디치의 역사


■ 카페에 있는 신문화사 동호회 '신문화사(새로운 역사)'

■ 기 부아의 「역사유물론과 아날학파」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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