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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나 때문에 여배우들이 화장실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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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주말드라마 ‘무자식 상팔자’로 돌아온 김수현 작가. 장르를 불문하고 흥행시키는 비결을 묻자 “유명인이란 평판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그저 굉장히 성실하고 진지하게 작업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무자식 상팔자’는 27일 오후 8시50분 처음 방송된다. [사진 문덕관(STUDIO LAMP)]

드라마 작가 김수현(69)-. 한국 드라마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최고의 드라마 흥행사다. 김 작가가 JTBC 주말극 ‘무자식 상팔자’(27일 오후 8시50분 첫 방송)로 돌아온다.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을 잇는 홈드라마지만 ‘미혼모’라는 사회적 이슈도 정면에서 다룬다. 일명 ‘엄친딸’로 불리던 여판사가 미혼모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 중심 모티브다. 연출은 그와 20년 가까이 함께해 온 정을영 감독이 맡았다.

‘무자식 상팔자’에서 미혼모 소영 역을 맡은 엄지원.

 김 작가는 지난해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여성의 러브스토리를 다룬 ‘천일의 약속’에서 치매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웠었다. 그가 이번에 ‘미혼모’라는 민감한 사안을 어떤 식으로 빚어낼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순화동 JTBC 사무실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그는 “배우들과 11, 12회 대본 리딩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운을 뗐다.

 -다루는 소재가 매번 화제다.

 “이슈화 의도를 가지고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가령 ‘엄마가 뿔났다’를 쓸 때는, 엄마의 인생이라는 게 참 힘들고 고달픈데 저항운동을 해 본다면 어떨까 싶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자식 하나쯤은 동성애 성향을 가진 아이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미혼모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서는 내놓고 말하기 참 힘든 소재다. 대개 환경도 안 좋고 학력도 좀 모자란 그런 친구들이 겪는 일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미혼모는 누구나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아주 똑똑하고 잘나가고 멀쩡한 아이가 그렇다면 어떨까 싶어 시작했다. 아주 심플하다.”

 -작업이 힘든 순간은.

 “첫 회를 쓸 때다. 나는 플롯을 짜놓고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냥 인물만 만들어 놓는다. 첫 회에서 그 인물들을 데려다 놓고 놀게 해야 되는데, 그게 힘들다. 인물의 성격과 사연은 뼈다귀일 뿐이다. 신경줄과 근육을 만드는 게 만만치 않다. 하지만 회가 거듭되면서 그들이 알아서 놀기 시작한다. 정해 놓은 결말은 없다.”

 ‘무자식 상팔자’에는 통칭 ‘김수현 사단’이 출동한다. 이순재·유동근·송승환·윤다훈·김해숙·임예진·견미리·엄지원 등이다. 작가는 리딩 작업에 빠지는 일이 없다.

 -리딩 작업이 살벌하다고 들었다.

 “그렇게 살벌하게 굴지는 않는다. (웃음) 다만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는 있다. 길게 가야 하는 작업이라 그 역할에 버거워 보이면 조정이 필요하다. 사실 작업할 때 날카롭게 굴었던 건 예전과 좀 달라졌다. 이건 나의 성숙이다. 옛날에는 여배우들이 화장실에서 울고 그랬다더라. 안 되면 될 때까지 시키니까. 요즘도 배우들은 내 대본을 보고 ‘토씨 하나도 틀리면 안 된다’고들 한다더라. 그건 맞다. 내가 쓰는 ‘김수현의 말법’이 있기 때문에, 그걸 살리려면 틀리면 안 된다.”

 -김수현 사단은 마음에 드나.

 “다 사단이래. (웃음) 배역을 잘 소화해 주고 성실한 연기자가 좋다. 그렇게 한 번 인연이 되면 자연스레 챙기게 된다. 예를 들어 이순재 선생님은, 그냥 연기자가 아니다. 정말 탁월한 분이다. 대본을 한 번만 봐도 내가 상상했던 억양으로 저절로 연기를 해 준다. 이번에는 신세를 안 지려 했는데 역시, 대안이 없었다.”

 김수현 드라마의 장점은 생생한 캐릭터다. ‘언어의 마술사’로 불릴 만큼 대사 한 줄 한 줄에 신경을 쓰는 그가 만들어 낸 인물들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숨 쉬는 사람들 같은 느낌을 준다. 이번에는 한정 없이 사람 좋은 희재(유동근), 깐죽거리는 희명(송승환)과 천방지축인 막내 희규(윤다훈) 삼 형제가 주인공이다.

 -캐릭터를 만들 때 염두에 두는 게 있다면.

 “누군가를 모델로 삼기보다 여러 인물을 모자이크해 만든다. 인물을 제대로 만들고 나면 알아서 잘 뛰어놀지만 만들 때는 사실 이름 붙이는 것부터 골치 아프다. 너무 많은 작품을 해서다. (웃음) 특별한 이름을 짓지 않으려 한다. 그냥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이름으로 해야지.”

 -대가나 천재라는 수식에 대해서는.

 “대가는 나이를 많이 먹었으니까 하는 소리일 거고, 천재는 어렸을 때나 듣는 소리 아닌가. 어렸을 때 천재 소리는 많이 들었다. 말이 굉장히 야물었다. 그건 타고난 것 같아. (웃음) 동네 아주머니들하고 싸움도 잘해서 ‘쟤는 변호사 시켜라’ 그랬으니까.”

 -예전 같지 않을 때는 없나.

 “내가 늙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은 가끔 한다. 한편으로는 이 작업을 하는 데 있어 ‘감각이 다는 아니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사람 이야기라서다. 물리적으로 힘든 건 별로 없다. 원래도 순전히 정신력으로 가는 기차였거든.”

 -후배들의 작품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나.

 “좋은 작품도, 마음에 안 드는 작품도 있다. 다만 대본이 늦어지는 것은 안 된다. 결국 쓸 거면서 왜 미리 못 쓰나. 그건 게으름이다. 작가의 횡포다. 수십 명의 스태프가 정신없이 일하게 하면 안 된다.”

 작가는 인터뷰 중간 담배를 꺼내 들었다. 안티팬에 대한 생각을 질문하려는 참이었다. 빨간 뿔테 안경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뭘 어떡해. 난 열심히 하다 여기까지 왔는데.” 건강 관리를 위해 담배를 끊을 계획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가 웃었다. “담배? 난, 날마다 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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