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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계 역사] DJ정부 내각·공천 주물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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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 대통령의 동교동계는 40여년간 우리 정치사를 풍미해온 3金시대의 한 축이었다. 7대 대선 출마를 앞둔 1968년, DJ의 개인 연구소이던 내외문제연구소를 내외문제연구회(內外硏)로 개명하면서 정치 계보로 탈바꿈했다.

민주당 이용희(李龍熙)최고위원.김상현(金相賢)고문은 내외연 초창기 멤버로, 지금껏 당을 지키고 있다.

군사 정부 시절엔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이 이끌던 상도동계와 쌍벽을 이루며 민주화 투쟁을 주도, 야당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 80년 신군부의 등장으로 DJ가 투옥과 가택연금을 되풀이할 땐 동교동계도 수난의 세월을 겪었다.

동교동계의 전성기는 DJ정부 출범에서부터다. '동교동계 1세대'로 불리는 권노갑(權魯甲)전 의원.한화갑(韓和甲)대표.김옥두(金玉斗)의원.남궁진(南宮鎭)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은 일약 '핵심 실세'가 됐다. 특히 權전의원은 'DJ의 대리인'으로 통했다.

공천과 자금은 물론 각료 임명, 정부 산하단체 인사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는 정풍(整風)파동 땐 쇄신파 의원들로부터 '비선(秘線)라인'으로 공격받았다.

韓대표는 신파의 수장으로 급부상하면서 2000년과 2002년 두 차례 전당대회에서 모두 1위 득표해 당권을 거머쥐었다. 金의원은 4.13총선 때 사무총장을 맡아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이협(李協)최고위원과 이윤수(李允洙)의원도 DJ의 비서 출신이다. 학생운동권 출신인 설훈(薛勳).배기선(裵基善)의원과 최재승(崔在昇).윤철상(尹鐵相).정동채(鄭東采)의원 등은 80년대 합류한 '2세대'다. 이들 역시 崔의원이 아태재단 후원회장, 鄭의원이 총재비서실장 등 요직을 거치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범동교동계'로 분류되는 한광옥(韓光玉)최고위원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훈평(李訓平).박양수(朴洋洙).조재환(趙在煥)의원, 문희상(文喜相).배기운(裵奇雲).전갑길(全甲吉)의원도 요직을 거친 케이스.

막강해진 동교동계에 대한 구설과 질시도 따랐다. 결국 일부 인사의 비리가 알려지고 DJ의 아들들 문제가 겹치면서 동교동계는 코너에 몰렸고, 최근에는 노무현(盧武鉉)당선자 측이 추진 중인 당 개혁에서의 인적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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