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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같은 영화!? 스파이 키드

중앙일보

입력

만화인가, 영화인가? '스파이키드'를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영화적인 정교함이나 무게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황당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렇다면 별로 볼만한 영화가 아닐까? 그렇진 않다. '스파이 키드'는 어린이 관객이라면 호기심을 느낄만하다. 어린 시절, 누구나 집 어딘가에 은밀한 비밀통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지 않을까. 아니면 사실 우리 부모는 중요한 임무를 지닌 사람들인데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평범하게 사는 척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역시. 이런 유아적인 상상력으로 똘똘 무장한 영화가 바로 '스파이 키드'다. 적당하게 즐기면서 본다고 생각하면 즐길만한 구석이 있는 영화라는 의미다.

'스파이 키드'는 일단 어른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평범한 가정의 부부인 그렉과 잉그릿. 이들은 한때 세계적인 스파이였지만 지금은 평범하게 살고 있다. 카르멘이라는 딸과 주니라는 아들을 키우면서 말이다. 어느날 평화롭게 살고있던 그렉과 잉그릿 부부에게 일선에 복귀하라는 명령이 전달된다. 이들은 플룹 일당이 로봇인간을 만드는 것을 저지해야만 한다. 여기서부터 영화에선 급속하게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돌변한다. 한편, 카르멘과 주니는 부모가 실종되자 엄마 아빠를 직접 구하기 위해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한다. 플룹 일당의 아지트에 숨어든 카르멘과 주니는 적과 대결을 벌이게 된다.

어느 외지에선 영화에 대해 "어른영화의 박진감있는 요소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의 상상력의 결합"라고 평했다. 그럴듯한 평가다. '스파이키드'엔 기존의 첩보스릴러 영화, 그러니까 '007' 시리즈 등에서 볼수 있었던 특수무기들이 등장한다. 씹고 있던 껌이 상대를 기절시키는 무기가 되고, 자동차는 당연하게도(!) 물속에서 잠수함이 된다. 무엇보다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눈에 띄는 것이다. 이밖에도 영화에선 만화같은 설정들이 넘쳐난다. 세계 정복의 야심을 품은 일당들이 아이들 모양의 로봇을 만들어 스파이로 만들려고 한다던가 기계를 이용해 사람을 이상한 장난감 모형으로 만들어버리는 등 기발한 장치들이 발견된다. 이밖에도 순간접착제, 기절 비누방울, 알약 햄버거, 미니 카메라 등 영화엔 신기한 볼거리들이 꽤 있다.

'스파이키드'의 감독은 약간은 의외의 인물. '엘 마리아치'나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만들었던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의 신작이다. 기존의 감독 영화들이 B급 상상력이나 장르혼합적인 특성을 지녔다면 '스파이키드'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다. 이 영화로 로베르토 로드리게즈는 할리우드 주류에 안착하는데는 별무리없이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기존의 감독 영화에서 볼수 있었던 화려하면서 눈부신 스타일은 수축되었다는 인상을 남긴다. 특별하게 감독의 스타일이나 개성을 발견하기 쉽지 않은 영화라는 점에서 '스파이 키드'는 그에겐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를 안겨준 작품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은 약간의 장난기를 섞어놓았다. 영화에 나오는 전략사무국의 건물은 감독이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배우 조지 클루니 등이 카메오로 잠깐씩 등장한다.

'스파이키드'는 엔터테인먼트 영화로는 그럭저럭 볼만하다. 권선징악의 교훈이나 친구들의 우정을 강조하는 등 할리우드 주류영화의 관습도 변함없이 관철된다. 약간 의아한 것은 디즈니 영화를 연상케할 정도로 '뻔한' 영화를 굳이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이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엘 마리아치' 시절에 그가 보여줬던 눈부신 재능에 비하면, '스파이키드'는 약간 초라해보이는 구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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