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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오피스텔 투자했다가 퇴직금 날렸어요"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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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기자] 몇 일 전 중앙일보조인스랜드 취재팀으로 부동산 기자를 찾는 전화가 왔다. 지긋한 나이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울분이 묻어났다.  은퇴한 노인들 쌈짓돈 노리는 사기 분양에 대한 경고를 하고 싶다는 김모(63)씨.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업주부인 그녀는 남편의 은퇴 후 노후 생활비 마련에 대한 고민이 컸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의 109㎡형(공급면적) 아파트와 퇴직금으로 받은 8000여 만원이 김씨 부부의 전 재산. 길어진 평균 연령 탓에 아파트를 담보로 주택연금을 신청하는 것은 이르다고 판단한 김씨 부부는 매월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에 관심을 가졌다.

퇴직금 8000여 만원에 김씨가 가족들 모르게 모아둔 쌈짓돈 4000만원을 보태 1억2000만원의 종잣돈을 준비한 김씨 부부는 자금 부담이 적은 소형 오피스텔을 분양받기로 했다.

마땅한 상품을 찾던 김씨는 지난해 4월 경기도 용인시 구갈동의 A오피스텔을 보고 한 눈에 반했다는 것. 전용 19~30㎡ 102실인 이 단지는 학생ㆍ교직원 1만2000여 명이 머무는 강남대가 바로 앞에 있었다. 이미 완공한 용인 경전철이 운행을 시작하면 역세권 단지가 돼 입지 여건이 좋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선시공 후분양 단지라 완공이 한달 밖에 남지 않았고 완공 후 1년간 보증금 300만원에 월 40만~50만원의 수익을 보장하는 임대보증확약서까지 준다고 했다. 무엇보다 분양가가 실당 5300만~6500만원으로 저렴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김씨는 주저 없이 1억1000만원에 2실을 분양 받았다. 그런데 김씨의 수난은 7월부터 시작됐다. 한달이면 공사가 끝난다던 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5월 개통한다던 용인 경전철 개통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이제나 저제나 완공을 기다리던 김씨에게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진다.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김씨가 분양 받기 전 20억원이 근저당 잡혀 있었던 것.

그간 하도급 업체에 공사비도 지불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완공된 건물을 잃고 싶지 않았던 김씨와 계약자 90여 명이 각각 2000만~5000만원씩을 모아 근저당 잡힌 20억원을 갚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공사비를 받지 못한 하도급업체들이 유치권 설정을 해논 탓에 공사비도 고스란히 떠안게 된 것.

시행사를 상대로 사기 분양 소송을 냈지만 올 7월 패소했다. 사기를 친 것이 아니라 자금 부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 패소 이유였다. 김씨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분양대금 60억원을 받아서 하도급 업체에 공사비도 주지 않은 시행사가 자금 부족으로 건물을 경매에 넘긴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공은 됐지만 제때 공사비가 지급되지 않자 하도급 업체들이 이른바 날림 공사를 한 것. 비가 조금만 내려도 물이 새고 끊임없이 하자가 발생해 수리비가 계속 들어가는 것.

이제와서 오피스텔을 포기하면 퇴직금에 그간 모아둔 쌈짓돈까지 모두 날리고 빈털터리가 돼 오도가도 못한다는 김씨의 이야기를 듣고 기자의 마음도 착잡해졌다. 김씨의 사연이 기구한 탓도 있지만 투자자로서 김씨가 놓친 부분이 보여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수익형 부동산을 찾던 김씨는 규모가 작은 소형 오피스텔을 선택했다. 시행사가 시행ㆍ시공을 모두 맡은 단지다. 시행사는 직원 10명 내외의 작은 회사였고 설립한지 2년 남짓이었다.

전문가들이 분양가가 다소 비싸더라도 중견업체나 대형건설업체가 분양하는 단지를 권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완공 전 건물 분양 받을 때는 토지등기부등본 확인해야

시행사와 시공사가 따로 있었다면 시행사가 부도가 났더라도 시공사에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이 단지의 경우 이런 가능성도 없었다. 김씨가 받았다는 임대보증확약서도 분양업체가 건재하다는 것이 전제이기 때문에 무의미한 종이조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놓쳤다.

무엇보다 토지등기부등본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김씨의 실수다. 김씨는 선시공 후분양 단지고 건물 완공이 코 앞이라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대개 건축물에 대한 등본 확인은 일반화됐지만 토지에 대한 부분은 소홀히 하기 쉽다. 투자에 앞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주변 개발호재로 꼽혔던 용인 경전철의 경우 김씨가 분양 받기 전부터 용인시와 시행사인 용인 경전철간의 마찰로 운행이 미뤄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분양업체의 말만 믿지 말고 실제로 개발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인근 중개업소나 시청 등을 통해 알아봐야 한다.

학생ㆍ교직원 1만2000여 명이 머무는 강남대가 있어 공실 걱정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안타깝다. 김씨는 수요만 생각하고 공급은 생각하지 못했다. 강남대 인근은 용인시에서도 대표적인 원룸ㆍ고시원ㆍ다가구 등 소형주택 밀집 지역이다.

임대수요가 넉넉한 것은 맞지만 공급이 더 많다면 공실은 물론 임대료 하락도 뻔한 일이다. 분양 받기 전 인근 중개업소에 들러 임대료 수준이나 공급 상황, 공실률 등을 파악하는 품을 들여야 한다.

요즘 수익형 부동산 분양이 붐이다. 특히 자금 부담이 적은 소형 오피스텔·도시형생활주택·상가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퇴직금, 쌈짓돈은 물론 대출까지 받아 소형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은퇴 후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노후 생활비, 자녀들이 보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교육비 등 소박한 기대를 한다.

비단 수익형 부동산뿐 아니라 모든 부동산 투자에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투자에 앞서 꼼꼼한 현장 분석과 다각도의 검토로 소박한 기대가 울분으로 바뀌는 일이 없어야겠다.

<저작권자(c)중앙일보조인스랜드. 무단전제-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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