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와 자동차] 윤보선 前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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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제4대 대통령을 지낸 해위(海葦) 윤보선(1897~1990)은 아마도 한국인 중 학생 자가운전자 1호로 기록될 것이다.

명문가 출신인 해위가 자동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가 열살 가량이던 구한말 시절, 당숙인 윤치호가 영국제 자동차를 사오면서부터였다.

소년 윤보선은 상하이(上海)에서 데려온 중국인 운전수를 졸라 집안 마당을 돌아다니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지금도 보존돼 있는 해위의 서울 안국동 집은 당시 99칸의 대저택이었다.

일본 도쿄(東京)에 건너가 공부를 하다가 귀국한 해위는 1918년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상하이로 떠났으나 "공부를 더한 뒤 독립운동을 하라"는 임시정부 어른들의 충고에 영국 유학을 결심한다.

일본 경찰의 검문을 피해 간신히 영국으로 건너간 해위는 명문 에든버러대에 입학한 지 2년 만에 당시로선 거금인 4백파운드를 주고 검은색 피아트를 사서 몰고 다녔다.

8천명이나 되는 에든버러 대학생 중 해위는 유일한 자가운전자여서 동료 학생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차를 살 때 자동차 판매회사에서 기술자가 나와 한달간 운전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쇠막대를 손으로 돌려 시동을 걸어야 하는 이 스포츠형 오픈카를 타고 해위는 시간만 나면 시내를 돌아다녔다. 첫 학생 자가운전자답게 해위는 해방 후 공직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차를 섭렵한 것으로 유명했다.

차를 좋아한 해위는 해방 직후 영국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 오스틴에서 제작한 스포츠카를 손수 몰고 다녔다. 서울시장.상공부장관.국회의원을 지낼 때는 지프를 탔다. 당시에는 장관이나 국회의원 모두가 지프를 타고 다녔다.

6.25 동안 부산에 내려가 적십자사 총재로 일했을 때는 지프를 닮은 영국제 랜드로버를 탔다. 신한당 총재 시절에는 크라이슬러 8기통을 탔는데, 기름을 너무 많이 먹어 폴크스바겐으로 바꾸기도 했다.

해위는 딱정벌레 폴크스바겐을 가장 좋아하는 차로 꼽기도 했다. 대통령 후보 때는 국산차인 현대의 69년형 포드20M을 타고 유세장을 누볐다.

해위의 운전 매너는 아주 좋았다. 많은 시간 차를 운전했지만, 일생 동안 교통법규를 위반한 것은 딱 두 번이었다고 한다.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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