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건 어때요? 견딜 만해요? 그럼 사는 건?

중앙일보

입력

하성란씨(35)는 새 소설 <내 영화의 주인공>(작가정신) ‘작가의 말’에 이렇게 쓰고 있다.

“종합선물세트를 아시죠? 저는 <내 영화의 주인공>이 그 종합선물세트의 300원짜리 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껌 한 통 들어낸다 해도 종합선물세트에는 별 흔적이 남지 않죠. 그렇다고 아예 없으면 허전합니다. 그런 껌 같은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껌처럼 제 소설을 씹어주세요. 단물이 다 빠지고 나면 꼭 종이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누군가의 신발 밑창에 붙어 성가신 존재가 되기는 싫답니다.”

껌 같은 소설이라. 이제 갓 데뷔한 젊은 신인작가도 아닌 터에 저런 말을 하기란 쉽지 않다. 아마도 저 말의 뒤켠에는 단물이 다 빠지고 버려지는 신세가 되더라도 읽는 순간만은 정말 재미있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작가의 욕망이 숨어 있을 것이다.

“어른들한텐 죄송한 일인데요 정말 재미 있는, 껌 같은 소설을 써보고 싶었어요. 문학의 엄숙주의같은 거 없이 말예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제 경우는 이야기 하나가 떠오르면 논리정연하게 쓰지는 않아요. 그냥 제 감각이 이끄는 대로, 제 감각이 말하는 대로 쓰죠. 소설을 다 끝내고 보니 느낌이 괜찮았던 것 같아요.”

열아홉 살 소녀가 바라보는 죽음
그렇지만, 하성란씨는 이번 소설에서 실패했다. 재미 있는 소설을 만드는데는 성공했지만 껌 같은 소설을 쓰는데는 실패했다. 단물을 다 빼먹고 나서도 쉽게 버릴 수가 없다. 그건 아마도 소설 곳곳에 배어 있는 매혹적인 대사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상숙이 폐가에 들어가 빙의(憑依: 구천을 떠도는 이름 모를 귀신이 다른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는것)를 체험하는 장면은 섬뜩할 만큼 인상적인 장면이다. 불치병이 걸린 상숙은 부러 명랑한 목소리로 귀신에게 묻는다.

“거긴 어떤가요? 있을 만해요? 죽는 거 말예요. 정말 어때요?”
“정말 여기 없어요? 없는 거예요?”

마치 영화 ‘러브 레터’의 대사 같지만 소설 속의 폐가 장면은 그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다.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여고생 세 명의 ‘탈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작가는 못마땅하기도 하다. 열 아홉 살 어린 소녀가 느끼는 ‘죽음’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이 소설을 쓰면서 ‘이런 걸 쓰고 싶다’라고 생각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죽음’에 대한 거였어요. 일탈이니 이런 건 소설을 이끄는 소소한 재미 때문에 한 거구요. 열아홉 살 가볍고 철부지인, 그러면서 나름대로는 성숙했다고 자부하기도 하는 한 아이가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써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소설이란 게 보는 사람이 좋아야 하니까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는데’말하고 나면 변명이 돼버리고 말죠.”

“저 원래 굉장히 유머러스한 사람이에요”
소설의 전반부, 여고생 세 명이 학교를 탈출하는, 그야말로 껌 같고, 영화 같은 이야기들은 이 소설이 문학잡지 <베스트셀러>에 연재하던 것이라는 이유도 크다. 사정 때문에 연재를 일찍 끝내고 1백여 매를 더 추가했다.

그래서인지 소설 전반부와 후반부가 사뭇 다르다. 엄밀히 두고 보자면 후반부가 훨씬 진중하다. 하지만 전반부와 후반부가 서로 어깃장을 놓지는 않는다. 아마도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하성란씨 특유의 재치 있는 대사와 묘사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여고생들의 대사가 압권이다.

“저 원래 굉장히 유머러스한 사람이에요. 나이는 들어가지만 철이 안드는 부분도 많구요. 굉장히 진지한 인생얘기나 뭐 그런 걸 물어보면 갑자기 말문이 탁, 막히거든요. 이번 소설이 제 자전적인 얘긴 아니지만 쓰는 게 힘들진 않았어요. 취재라고 할 것까진 없고 요즘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마을버스를 많이 탔어요. 마을버스를 타고는 같은 노선을 계속 돌았죠. 그냥 머리 속에 주인공들을 그려요. 혈액형 같은 것도 다 정해놓죠. 그리고 눈 감으면 그 사람들이 떠올라요.”

하성란씨는 요즘 술을 꽤 즐겨 마신다. 그 이유 역시 소설 때문이다. 주인공들을 너무나 구체적으로 생각한 탓인지 술을 먹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이 많았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말을 건네는 것 같기도 하고 폐가 장면을 쓸 때는 귀신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해서 술을 먹지 않고는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날아 오르지만 날아 오를 수 없는 슬픔
하성란씨는 소설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을 ‘죽어서조차 영원히 탈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소설의 끝 부분, 주인공 상숙은 패러 세일링을 통해 하늘을 난다.

친구들은 “새 같아요. 정말 새 같아”라고 울먹이면서 상숙의 비상을 축하한다. 하지만 그건 나는 게 아니었다.

“패러 세일링이라는 게 참 묘해요. 저는 타봤거든요. 날아오르긴 하지만 더 이상 도약하거나 비약할 수 없어요. 그래서 자기가 자유롭고 싶어서 끈을 끊어버리면 날아가는 게 아니라 곧바로 떨어져요. 땅이나 바다로.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슬픔인 것 같아요.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거창한 대안같은 건 없고 그냥 그런 죽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성란씨는 열아홉 살 소녀의 입을 빌어 독자들에게 묻는다.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이 삶을 어떻게 견디고 있느냐고. 견딜만 하긴 하냐고.(김중혁/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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