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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즐기는 ‘전투 사령관’으로 말투도 공격적이고 단호해져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후보가 12일 평택 해군2함대 방문 중 양만춘함에 올라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평택=뉴시스]

#장면1. 2011년 10월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서울시장 선거 지원유세.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 지지연설을 위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유세 차량에 섰다. 정치에 뛰어든 뒤 첫 대중 연설이다. 수첩을 들고 마이크를 잡은 그는 선량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원고를 든 손은 떨렸고 말은 종종 끊겼다. 참모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어색했다”고 기억했다.

#장면2. 1년 만인 지난 12일 경기도 평택 2함대 양만춘함 갑판 위. 군복 상의 차림인 문재인 후보의 연설이 공세적이다. 2007년 노무현-김정일 회담 대화록과 관련된 새누리당 공세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면 박근혜 후보가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들이 질문을 하자 격앙된 어조로 “됐고요”라며 질문을 가로막거나 자르기도 했다. 예전의 ‘착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김부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문 후보가 착한 아저씨의 이미지를 벗고 결연한 의지를 가진 전투 사령관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4·11 총선과 민주당 후보 경선을 치르면서 ‘강한 문재인’으로 거듭났다는 뜻이다. 송창욱 캠프 부대변인은 “예전과 달리 선거를 즐기는 모습이다. 스펀지처럼 변화를 빨아들인다”고 말했다. 유세 현장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경제민주화 타운홀 미팅 현장에 참석한 박창훈(28·화곡동)씨는 “차분하고 착한 분으로 알았는데 직접 보니 상당히 공격적이고 말투가 단호해 놀랐다. 권력 의지가 느껴졌다”고 평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얘기할 때 과거엔 초조함이 보였는데, 요즘엔 말투와 목소리가 공격적”이라고 말했다. 카메라를 의식해 본인의 트레이드마크인 파안대소하는 표정을 자주 짓는 모습도 눈에 띈다고 최 소장은 덧붙였다. 연설 전문가 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은 문 후보의 눈빛에 주목했다. 김 원장은 “사람의 눈은 감정이 실리면 말을 한다. 요즘 문 후보의 눈이 그렇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말투에 웅얼거리는 느낌이 있었는데 요즘엔 성량 자체가 커지고 단호해졌다. 이젠 감정을 실어 손짓과 눈빛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본인 스스로 원고를 작성하고 수정하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한다. 송 부대변인은 “자기 스타일로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다”고 전했다.

변화의 동력은 절박함이다. 양정철 메시지팀장은 “점잖은 분이다. 하지만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방향이 뭔지를 두고 후보가 많이 고민하고 노력한다. 승리에 대한 신념과 확신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후보는 요즘 참모들에게 “대통령이 되면 이건 반드시 해내겠다”는 말을 부쩍 자주 한다. 송 부대변인은 “예전 같으면 낯간지럽다고 안 쓸 표현”이라며 “권력 의지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라고 전했다. 11일엔 영등포 중앙당사 기자실 입주식에 들러 “12월의 행복을 위하여”라고 건배사를 외쳤다.

절박함은 과감함으로 이어졌다. ‘쇼 하지 말자’는 게 문 후보의 원칙이다. 하지만 경선 과정에선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해 ‘명동스타일’을 내놨다. 문 후보가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영화 ‘써니’ 주제가에 맞춰 율동을 선보였다. 캠프 내에선 “후보 이미지와 안 맞는다”는 의견과 “국민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그런데 문 후보가 “국민에게 다가가자”는 쪽으로 정리했다. 캠프 관계자는 “문 후보가 처음엔 쑥스러워했지만 막상 현장에선 잘 소화해냈다”며 “참모들도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변화의 방향은 간결함이다. 송호창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에 합류했을 때 문 후보는 “아프다”는 세 글자만 내보냈다. 캠프에선 격앙된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문 후보가 교통정리를 했다고 한다. 김경수 수행1팀장은 “송 의원은 문 후보가 아주 아끼던 후배다. 송 의원이 총선에 출마하도록 직접 권유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아프다는 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양정철 팀장은 “후보가 워낙 부사나 수식어를 쓰는 걸 꺼린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가는 게 문재일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한계도 있다. 최진 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 지우기는 문 후보에게 있어서 과제”라고 말했다. 김미경 원장은 “문 후보의 연설은 아직 대화형에 가까운 ‘토크쇼 스타일’이다. 자신만의 스토리를 녹여 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중 연설형으로 과감하게 변신하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다.

이런 문 후보에게 부인 김정숙(58) 여사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코디 역할을 맡고, 때론 남편의 대타로 활약한다. 10일 문 후보 선대위 민주캠프의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 입주식 땐 지방 일정에 나선 문 후보를 대신해 김 여사가 나섰다. 그는 경선 과정의 마찰을 고려한 듯 “여러분의 섭섭한 마음을 안다. 빚진 마음을 안고 당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여사는 문 후보가 총선 출마를 공식화하기 전인 지난해 11월 12일 경남 양산 자택으로 기자들을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제 남편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문 후보가 공식 대선 행보를 시작하자 ‘어쩌면 퍼스트레이디’라는 부제가 붙은 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란 책을 냈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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