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생의 선택을 두려워 말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92호 27면

독일에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정치가는 누구일까. 1989년 동·서독 통일 직후 독일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다. 압도적 표 차로 1위를 차지한 사람은 49년 제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분단된 서독 정부의 초대 총리 아데나워(1876~1967)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74세였다. 그는 63년 총리직에서 물러나기까지 전쟁의 참상을 딛고 ‘라인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경제부흥을 이룩한 인물이다. 지금도 독일 국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아데나워는 이렇게 그 시절을 회고했다.

삶과 믿음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원예가를 꿈꿨습니다. 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두 종류의 꽃을 교배해 삼색 오랑캐꽃을 개발해 내는 게 내 목표였습니다. 내 목표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실패는 내게 아주 큰 교훈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결코 하느님의 영역과 일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후부터 나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만을 하기로 결심했고, 또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의 겸손함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데나워는 쾰른에서 가난한 지방법원 서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은 어려웠지만 그는 현실을 불평하지 않았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데나워의 아버지는 늘 자애롭고 올바른 삶의 자세를 지니고 살았던 신앙인이었다. 아데나워는 공부를 잘했지만 집안 형편 탓에 대학에 진학할 수 없어 은행 견습사원으로 취직했다. 비록 견습사원이었지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하는 일이란 아침에 일찍 출근해 유리창을 닦고 바닥을 청소하고 우체국을 왔다 갔다 하는 잔심부름이 고작이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그는 믿을 만한 주위 사람들에게 자문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대부분의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아데나워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드디어 은행에 사직서를 내기로 했다. 은행에 들어간 지 2주일 만의 일이었다. 물론 순간적인 충동 때문은 아니었다. 충분히 심사숙고한 결론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 줬다.

이후 그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것은 법률 공부였다. 늦게 시작한 공부가 힘들고 어려웠지만 힘껏 노력했다. 그는 결국 쾰른 시장이 됐고,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서독 정부 초대 총리에 취임해 역사에 남을 많은 업적을 쌓았다. 아데나워는 평소 그의 운명이 이미 은행을 나오는 열여덟 살 때 결정됐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만약 내가 그때 빨리 은행을 나와 대학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

우리는 늘 살면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때로는 인생의 길을 뒤바꿀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두려워 선택을 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참다운 삶을 위해 선택을 해야 한다. 참다운 삶은 순간적이나 즉흥적인 게 아니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이 되려면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또한 여기에는 지혜와 분별력이 요구된다. 그전에 우리는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의외로 나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나는 무엇을 가장 잘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에 흥미가 있고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이 해답만 알아도 인생에서 절반은 성공이다.



허영엽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문화홍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성서에 관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써 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