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평양 숙소에 도청기 … 남북 정상 비밀대화, 녹취록 개연성 충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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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수행했던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의 대화를 녹취한 비밀대화록에 대해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밀대화록의 존재에 대해 듣거나 확인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1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다.

 김 전 장관은 정상회담 직후인 11월 말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 때의 경험도 소개했다. 그는 “숙소인 평양의 송정각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수행원들이 내 방 곳곳을 수색했는데 책장에서 폐쇄회로TV(CCTV) 카메라와 도청용 마이크가 4~5개 나왔다”며 “정상회담 때도 우리 측은 녹음기를 가져가지 못했어도 북에서는 녹음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 측이 정상회담을 녹음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 쪽)이 2007년 10월 2일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비밀대화록이란 게 있나.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두 정상은) 같은 말을 사용해 통역이 필요 없는 사이니까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거다. 당시 평양에서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호탕했고 들떠 있었다. 정상회담 내용을 현장에서 공개하지 않아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와서도 대화록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방한계선(NLL)에 대해선 어떻게 입장을 정리했나.

 “국방부의 입장은 명확했다. 서해평화협력지대에는 찬성하지만 NLL을 인정한다는 북한의 약속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회담 전인 8월 18일 청와대 회의에 나 대신 참석한 김관진 당시 합참의장(현 국방부 장관)에게 ‘절대 NLL양보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라’고 지시했다.”(당시 김장수 장관은 눈병으로 인해 대통령에게 전염의 우려가 있어 불참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의논하진 않았나.

 “단 한 번도 노 전 대통령과 NLL 문제를 의논한 적은 없다. 결과적으로 나는 국방부의 입장이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다른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다만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통일부 등에서 ‘국방부가 너무 강경하게 나온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8월 중순 청와대 외교안보장관회의 때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몇몇이 나에게 굽히라고 하더라. 그래서 ‘다수결로 하는 거냐’며 책상을 치고 밖으로 나와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담배를 피우고 난 뒤 ‘NLL 문제는 국방부에 맡겨 달라’고 하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 뒤 NLL 문제에 대해선 일절 상의하지 않았다.”

 -정상회담 때 김정일과 악수하며 고개를 숙이지 않아서 ‘꼿꼿장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는 원래 악수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고 말했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악수하는 다른 사진들을 보라. 깍듯하게 숙인다. 그런데 60만 군을 이끄는 국방부 장관이 어떻게 김정일에게 고개를 숙이나. 나는 수행원으로 방북했기에 회담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NLL에 대해 어떤 결론이 나올지도 우려된 측면이 있다.”

 -국방장관 회담 때 북측이 NLL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데.

 “북측 대표였던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NLL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장수 장관! 노무현 대통령도 NLL이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왜 당신은 인정하지 않느냐. 대통령에게 전화해 보라’고 하더라. 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회담과 관련한 전권을 내가 위임받고 왔으니 대통령에게 전화할 일도 없다’고 맞섰다. 김일철이 자꾸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길래 ‘이 문제는 김일성 주석도 인정했고, 김정일 위원장도 잘 알고 있으니 김 위원장에 전화해 보라’고 맞받았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내가 전권을 달라고 요청하자 ‘당신 마음대로 하고 오시오’라고 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국방장관의 경직된 자세 때문에 당시 회담이 실패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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