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계화·다문화 시대에 맞이한 한글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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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오늘 566돌 한글날을 맞이하는 감회가 새롭다. 올해는 특히 67개에 이르는 국어 관련 학술단체가 한글전용·한자혼용에 대한 이견을 잠시 접고 통합된 ‘한국어문학술단체연합회’를 결성하기로 해 더욱 경사스럽다. 어제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장에서는 의원들이 모처럼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은 재론하기조차 새삼스러울 정도다. 해외에서도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중 하나”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 등 찬사가 끊이지 않는다. 덕분에 한국어는 2007년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국제 공개어로 채택되었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능력시험(TOPIK) 지원자는 2007년 8만2881명에서 2011년 45만487명으로 급증했다. 한국학과를 개설한 해외 대학도 재작년 57개국 688곳에서 작년에 81개국 810곳으로 늘어나는 등 한국어 수요는 날로 상승세다.

 그러나 국내 상황을 보면, 바깥에서 들려오는 칭찬과 비약적인 성장세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글날이 언제인지 알고 있는 응답자가 불과 64%로, 2009년 조사(88.1%)보다 24.1%포인트나 줄어들었다. 일반 언어생활에서는 ‘바른말 고운말’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어린이·청소년들 대화는 욕설 범벅이고, 만화·TV드라마도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막말 풍조를 부추기고 있다.

 한글과 한국어는 다문화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비해야 하는 커다란 과제도 안고 있다. 국내 결혼이주자의 절반 이상은 한국어 실력이 중급에도 못 미친다. 이주자 자녀의 국어능력이 덩달아 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모국어, 제1·제2 외국어 등 수요자 처지에 맞게 국어교육 정책을 세분화하고 충분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한국어능력시험도 TOPIK 외에 다양한 목적·수준·연령대를 배려한 맞춤형 시험들을 추가로 개발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풍성하고 깊이 있는 한글 콘텐트를 축적하려는 국민적 노력이다. 최고의 글자가 최고의 내용을 갖추도록 애쓰는 것은 한글을 창제한 선현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