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몰래카메라와 '관찰카메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텔레비전을 보면서 궁금해지는 것들이 있다.

"저런 아이디어는 누가 냈을까" 에서부터 "저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을까" "저런 소품은 어디서 구했을까" 등 호기심의 갈래는 다양하다.

최근에는 "저 사람들을 어떻게 섭외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 프로그램이 생겼다. 바로 SBS에서 토요일 자정 부근에 방송하는 '터닝포인트 사랑과 이별' 이다.

때로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미국엔 냉전중인 부부를 스튜디오에 불러내 마음껏 싸우도록 조장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제작진은 그들이 설전뿐 아니라 육탄전도 불사하도록 아예 무대 한쪽에 링까지 설치해 둔다.

KBS '아침마당' 에서 화요일마다 내보내는 '부부탐구' 에도 실제 부부가 출연하여 서로의 입장을 하소연하지만 그것은 전문가의 상담 혹은 시청자의 조언을 받기 위한 일종의 토크쇼라는 점에서 이해가 된다.

그런데 '터닝포인트…' 는 극단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부가 직접 출연하여 그들의 문제적(?) 일상을 시청자에게 낱낱이 보여준다는 점이 신기해 보였다.

주인공들이 전혀 카메라(소형 디지털이긴 하지만) 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물다큐를 재연하는 대역배우의 '연기' 와는 판이했다.

몰래카메라와는 목표와 초점이 전혀 다른 이것이 이른바 관찰카메라다.

공개하고 싶을 리 없는 부부의 사생활을 '관찰' 하도록 허용하게 만든 연출의 비법은 뭘까. 과정은 복잡했지만 해답은 간단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쌓인 말을 제작진이 '끝까지' (이 점이 중요하다) 들어준다는 게 포인트였다.

말을 쏟아내기만 하던 TV가 반대로 말을 진지하게 경청한다는 게 그들이 절박한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한 지점이다. 화면을 보며 그들은 객관적으로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이 프로의 제작에는 웃지 못할 일화도 많다. 어렵사리 "찍어도 좋다" 는 승낙을 받고 갔더니 "이미 찍었다" (이혼서류에 도장을) 고 해서 제작진을 맥빠지게 한 경우도 있단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온 조한선 PD는 '터닝포인트…' 를 연출하면서 부부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도 소양교육을 받는데 일생을 건 '대도전'에 마땅한 교육프로그램이 없다는 건 문제라는 그의 지적에 수긍이 간다.

미디어는 때로 미디에이터(중재자) 다. 이 프로가 만들어주는 터닝포인트는 화해가 아니다. 잘못된 만남인 줄 알면서도 억지로 참고 살라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인간답게 살도록 돕자는 게 이 프로의 진짜 기획의도다.

주철환(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chjoo@ewha.ac.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