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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통상대책 세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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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년간 국제무역환경에 매우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고 이로 인해 우리의 중장기적 수출여건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통상전략이 재점검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세계 도처에서 경제블록화 추세가 가속되고 또 경제블록의 거대화 현상이 전개되고 있다. 그 결과 국제무역관계에서 한국의 비중과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저하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 중장기 수출여건 불투명

유럽에서는 1990년대 중반에 이미 15개 서유럽 선진국들이 기존의 유럽공동체(EC)를 크게 능가하는 경제통합체인 유럽연합(EU)을 완성하더니 뒤이어 동부 및 중부유럽의 10여개 구 사회주의국들이 EU 가입을 추진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유럽 전역이 하나의 경제로 통일돼 가는 것이다. 한편 서반구에서는 여러 개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상호 시장개방을 추구하더니 최근에는 남.북미 35개국이 미국의 주도로 전미주(美洲)자유무역협정(FTAA)에 착수했다.

이처럼 유럽과 서반구에 두개의 거대한 경제블록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병행해 우리의 이웃 중국이 어느새 세계 제7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또 수개월 내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성사시킴으로서 고속 경제성장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래서 2025년께까지는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경제로 등장할 전망이다. 그 결과 중국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거대한 경제블록이 된다고도 하겠다.

유럽과 서반구의 두 경제블록, 그리고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경제대국과의 교역관계에는 상당한 무역확대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럽과 중국 및 일본은 각기 하나의 커다란 단일시장인 만큼 각기 높은 시장잠재력을 제공해준다.

미주지역으로는 투자진출의 경제성이 매우 높을 것이고, 이러한 투자진출은 수출확대를 유발할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위협적 요인도 있는 것이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무역분규가 이를 예시해 준다.

미국의 행정부가 철강제품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을 위해 철강수입으로 인한 피해조사에 착수했다. EU는 한국이 조선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이를 곧 WTO에 제소할 방침이다.

한국이 중국으로부터의 마늘수입에 대한 긴급제한조치를 취하고, 중국이 보복조치로 대응함에 따라 두나라간 무역마찰이 조성된 바 있다.

한국과의 구조적 무역적자에 대한 중국측의 불만이 양국간 긴장을 더욱 고조시킨다. 일본은 한국의 폴리에스테르에 대한 반덤핑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무역분규는 흔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 이들 4대 무역상대에 의한 보호주의적 통상공세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심화할 조짐이 없지 아니한데 있다.

EU와 미국 중심의 블록화 추세는 EU와 미국의 '블록 내부지향성' 을 조장해 이러한 통상공세를 부채질할 우려가 있다.

마늘문제를 두고 중국이 50배 규모의 보복조치를 취했던 사실은 중국의 일방주의적 경향을 예고해 준다.

일본의 경우 경제의 구조적 어려움과 그 국민의 우경화 경향이 공격적 대외통상정책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 일본의 '대내지향성' 도 문제인 것이다. 이와 같은 통상환경 악화에 대한 우리의 대책은 무엇인가?

*** 개방지향 산업정책 긴요

무엇보다 WTO가 추구하는 다자적 무역규범을 옹호하고 강화하는데 앞장서 기여해야 한다. 경제대국들을 거인 걸리버에 비유한다면 다자적 무역규범은 이들 걸리버를 묶어두는 수십개의 밧줄에 비유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경제대국을 견제하고 그들과의 분규를 수습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 스스로 기존의 블록에 합류하든지 또는 우리 나름의 블록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EU.일본.중국 또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해 보아야 한다. 유사한 전략의 일환으로 칠레는 17개의 FTA, 멕시코는 EU와의 것을 포함해 25개의 FTA에 가입해 있다.

끝으로 이상과 같은 두가지 차원의 대응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의 산업정책이 개방지향적이고 또 무역정책이 WTO의 정신과 규범에 가급적 충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외지향적 국가발전 비전의 확립과 이에 따른 능동적 구조조정의 의지, 그리고 국민적 단합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해 한 - 칠레 FTA협상은 작지만 상징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양수길(세계경제연구원 자문위원 전 주OECD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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