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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 함께 키운 고구마·배추에 ‘이웃 사랑’ 얹어 배달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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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지난달 26일 오전 11시 서초구 신원동 434번지 일대는 초록 물결이었다. 2640㎡ 밭에는 허리춤까지 줄기가 올라온 고구마가, 660㎡ 밭에는 배추 모종 800개가 심어져 있었다. 최한성(62) 내곡동주민자치위원장은 “지난 5월에 심었는데 이렇게 자라 이번 달 수확을 앞두고 있다”며 방금 캐낸 고구마를 들어 보였다.
 

사랑의 밭을 가꾸는 사람들. 왼쪽부터 안수미 간사, 한재경 주무관, 최한성 위원장, 임반석 행정팀장, 허정희 주무관

이 밭을 가꾸는 이들은 내곡동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센터 직원이다. 지난 6월엔 이곳 660㎡ 밭과 주민센터 앞 990㎡ 밭에 심어놓았던 감자를 캤다. 주민자치위원회원, 주민센터 직원뿐 아니라 통장협의회, 새마을협의회와 지역 어린이 30여 명 등 총 70여 명이 참여했다. 수확량은 1800㎏이었다. 6㎏ 상자에 담아 지역 저소득층 가정에게 전달했다. 현재 키우고 있는 고구마, 배추도 시기에 맞춰 수확해 지역 독거 노인, 저소득층 가정, 경로당에 전달할 예정이다.

  내곡동에선 이 사업을 ‘사랑의 밭 가꾸기’라고 부른다. 사랑의 밭 가꾸기는 2004년 시작됐다. 최 위원장이 자치위원회 간사로 있을 때다. 다른 위원들과 모임을 가질 때마다 회의와 식사만 해 아쉬웠다. 이웃을 도울 일이 없을까 고민했다. 회의를 거쳐 당시 내곡동 내 유휴농지를 이용해 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배추를 심기로 했다. 농사 지을 땅은 최 위원장이 백방으로 알아봤다. 지인으로부터 무상으로 얻을 수 있었다. 2007년까지 해마다 1000포기 배추 농사를 졌다. 수확 후엔 김치를 만들어 나눠줬다. 하다 보니 양념 값이 만만치 않았다. 회원당 월 3만원인 자치위원회 자금으론 이 일을 계속하기 어려웠다. 2008년부턴 감자·고구마를 심었다. 감자를 캔 후 고구마를 심을 수 있어 이모작이 가능했다. 이번에도 주민자치위원회는 무상으로 빌릴 땅을 찾았다. 파종에서 수확까지 모두 참여했다. 2010년 구청에서 지원금을 받기 전까진 자치위원회비로 농사를 지었다. 안수미(49) 내곡동자치위원회 간사는 “농사는 서툴지만 이웃을 돕는 일이니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센터 직원들도 발벗고 나섰다. 임반석(56) 행정팀장은 경남 창녕출신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농사를 배웠다. 그 때 경험을 살렸다. 씨감자를 사러 경기도 하남시 농가까지 찾아갔다. 사온 감자는 4등분해 센터 지하실에 두고 싹이 트길 기다렸다. 이를 심을 수 있게 밭으로 옮기는 일도 센터 직원과 그가 맡았다. 고구마 줄기는 인터넷으로 알아봐 전남 해남산을 주문했다. 가뭄이 심했던 지난 5월 임 팀장은 주민에게 스프링클러를 빌려 일주일간 밭에 물을 줬다. 직원들은 1톤 행정차량을 타고 거동이 불편한 독거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수확물을 나눠 주기도 했다.

  한재경(38) 주무관은 “감자·고구마를 받은 주민들이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맛있다고 전화가 오면 뿌듯해 진다”고 전했다.

조남노(57) 내곡동장은 “사랑의 밭 가꾸기 사업으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고 주민 화합을 이룰 수 있었다. 캐기 행사에 참여한 지역 어린이들은 도심 속에서 자연을 배웠다”며 “다음해엔 기존 사업을 확대하고 마을공동체가 주축이 돼 화훼농업에도 도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조한대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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