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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 빵집 부당지원…신세계 첫 제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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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신세계SVN은 그룹 지원에 힘입어 지난해 매출이 53% 늘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이마트에 있는 ‘데이앤데이’ 매장. [신인섭 기자]

“사장단 회의 시 허 실장님 지시 사항-베이커리 지원할 것.”
신세계그룹이 베이커리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한 사실이 적발돼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른바 ‘재벌빵집’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첫 제재다. 부당 내부거래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고위 임원이 관여한 정황도 드러났다.

 3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신세계SVN을 부당 지원한 신세계와 이마트, 에브리데이리테일에 총 40억6100만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신세계SVN의 베이커리와 피자 부문 판매수수료를 낮춰 줘 2009년부터 총 62억1700만원을 지원한 혐의다.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 지분 40%를 보유한 신세계SVN은 데이앤데이, 베끼아에누보 등 빵집을 각각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에서 운영해 왔다.

 공정위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신세계는 2009년부터 그룹 차원의 지원을 해 왔다. 신세계SVN 경영은 당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09년 매출 증가율이 1.8%에 그쳤다. 베이커리 부문은 아예 매출이 7.2%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세계백화점은 ‘베끼아에누보’ 수수료율을 25.4%에서 15%로 대폭 낮춰 줬다. ‘반값 피자’로 인기를 끈 이마트 ‘슈퍼프라임피자’는 5%이던 수수료율을 1%로 떨어뜨렸다. 이마트는 지난해 3월 피자 수수료율을 다시 5%로 올리면서 빵집인 ‘데이앤데이’의 수수료를 23%에서 20.5%로 인하하기도 했다.

 이런 지원에 힘입어 신세계SVN은 승승장구했다. 적자가 커져 철수 위기에 놓였던 베끼아에누보는 버틸 수 있게 됐다. 이마트 피자는 가격 경쟁력이 커지면서 ‘반값 피자’로 인기몰이를 했다. 지난해 신세계SVN 피자 매출은 전년보다 514% 늘었고, 피자헛·미스터피자·도미노피자에 이은 업계 4위가 됐다. 신세계SVN 전체 매출은 2010년 23%, 지난해 53% 급증했다.

공정위는 수수료율 인하에 정용진 부회장도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가 확보한 신세계SVN 직원 노트에선 ‘수수료 D&D 20.5%, 피자 5% 확정(정 부회장님)’이란 메모가 발견됐다. 공정위 측은 “지난해 이마트가 피자 수수료율을 5%로 다시 올리면서 23%이던 데이앤데이 수수료를 20.5%로 낮춰 준 결정에 정 부회장이 관여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 빵집이 점유율을 키워 가면서 골목 빵집·피자집은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빵집 프랜차이즈 점포 수는 전국적으로 총 200여 개 감소했다. 중소 피자업체 매출 역시 전년보다 34% 줄었다. 김형배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그룹 내 유통망에 손쉽게 입점하는 것 자체가 특혜인데 판매수수료까지 낮춰 받았다”며 “이런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영업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계열사 지원으로 거둔 이익을 총수 일가에 몰아주는 ‘터널링(부의 이전)’도 문제다.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은 신세계SVN 배당금으로 지난 3년간 12억원을 가져갔다.

 공정위는 ‘재벌빵집’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지난해 10월 신세계SVN과 보나비(삼성), 블리스(롯데)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세 회사 모두 그룹 총수 딸들이 운영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공정위는 조사 착수 1년 만에 신세계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그룹은 3일 “신세계SVN의 작년 영업이익률은 1.87%로, 소비자에게 저렴한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 운영하는 업체”라며 “ 판매수수료율도 롯데브랑제리나 아티제블랑제리 등 동종업계(20~22%)와 비슷해 부당 지원이 아니다”고 밝혔다. 신세계는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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