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피폭 흔적은 2년간 지워졌지만 … 훈련 총소리에도 가슴 쿵쾅쿵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1일 오후 연평도 당섬 부두에서 주민들이 그물에 걸린 꽃게를 떼어내 손질하고 있다. [유길용 기자]

“할머니이∼” “어이구 내 새끼, 배 타고 오느라 고생했지?”

 한적하던 섬마을이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한가위 당일이던 지난달 30일 오후 연평도 당섬 부두는 귀성객과 마중 나온 주민들로 북적였다. 전날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결항했던 여객선은 이날 380여 명의 승객으로 만선을 이뤘다.

 연평도에 들어서자 알록달록한 벽화들이 뭍손님을 반겼다. 연평도 명물인 꽃게와 새·꽃 그림들이 섬 분위기를 한껏 밝게 물들였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그린 그림이다. 포격 2주년을 앞둔 연평도에 남아 있는 당시의 상처는 포탄을 직접 맞은 마을 운동장 벽에 난 구멍뿐이었다. 유일하게 보수하지 않고 영구 보존하기로 한 그날의 흔적이다. 불에 타고 무너진 가옥들이 있던 폐허에는 아담한 신식 벽돌집이 들어섰고 중앙로도 신축 상가들로 새 단장했다. 전에 없던 마을버스도 생겼다. 고령의 주민들을 위해 면사무소에서 직접 운행하는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이다. 주민들은 “지난 2년 동안의 변화가 과거 10년간의 변화보다 컸다”고 했다.

 인구도 포격 직전 1930여 명에서 현재 2019명으로 다소 늘었다. 300억원이 넘는 정부 지원 사업의 영향으로 각종 공사가 많아진 까닭이다. 연평면사무소 관계자는 “주민의 경우 뱃삯이 외부인의 10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한 것을 비롯, 각종 혜택이 있기 때문에 외지인도 주민등록을 옮겨온다”고 말했다. 포격의 현장을 보려는 관광객도 늘었다.

 겉으로만 보면 연평도 주민들은 2년 전의 아픔을 말끔히 씻고 평온한 일상으로 복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슴속 깊이 새겨진 생채기는 좀처럼 아물지 않고 있다. 나고 자란 섬을 지키고 있는 중노년 주민의 상당수는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이른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서부리에 사는 김부전(84) 할머니는 그날 이후 불면증에 걸렸다. 당시 김 할머니의 바로 뒷집이 포탄에 맞았다. 김 할머니는 “아직도 그때 기억이 되살아나면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했다. 마을 이장 임병철(66)씨는 “수십 년 동안 훈련으로 포 쏘는 소리를 들어도 무감각했는데 이제는 총소리만 나도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며 “포탄이 또 떨어지는 건 아닌지 북쪽 하늘을 바라보는 버릇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주민도 적지 않다. 8월 인천시가 연평도에 의료진을 보내 실시한 심리검사를 받은 25명은 전원 트라우마 고위험군 판정을 받았다. 대부분 불면증과 식욕 부진, 가슴 통증 등을 호소한 이들은 상담 치료와 약물 치료를 함께 받고 있다. 인천시 옹진군 서해5도특별지원단 관계자는 “인천시립의료원에서 MRI검사 등 정밀진단을 실시하고 있다”며 “심리적 안정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추석을 맞아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모처럼 가슴속 상처를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보름달이 떠오르자 주민들은 예전의 평화롭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빌었다. 이엄전(80) 할머니는 “조기 파시(시장)가 들어서 북적대던 30년 전의 옛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평도=유길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