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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 자꾸 말하면 야합 같아 80일, 왕조실록 쓸 만한 시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대선 출마선언 다음 날인 20일 정연순 변호사를 공동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정 변호사는 첫 여성 민변 사무총장ㆍ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본부장을 지냈다. 하지만 정치 경험이 없어 정치권에선 의외란 말이 많다. 야권연대를 조언해 온 범야권 원로 모임 ‘희망2013ㆍ승리2012 원탁회의’ 멤버인 백승헌 변호사가 그의 남편이다. 백 변호사는 문재인 캠프에 합류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고사했다.

정 대변인을 26일 캠프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 공평빌딩에서 만났다. 개소식 전인 데도 캠프엔 자원봉사자들이 오갔다. 그는 “자원봉사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 힘들 지경”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의 대변인이 된 계기는.
“민변 사무총장을 지난 5월 마쳤는데 금태섭 변호사가 ‘(안 후보가) 만나고 싶어 한다’고 연락했다. 열흘 전쯤(16일 전후) 처음 만났다. ‘대선 나가려니 도와달라’는 말은 없었고 ‘정말 잘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묻고 있다’는 고민만 이야기하더라. 나도 고민하다 며칠 뒤 안 후보가 대선에 나가면 도와드리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랬더니 ‘국민께 드리는 말씀’ 19일 행사에 나와달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대변인을 하면 어떻겠나’란 제안을 받았다.”

-남편 백 변호사는 왜 문재인 캠프 합류를 거절했나.
“남편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겠다고) 승낙한 적이 없다. 남편은 야권연대 조정 역할을 해왔고, 민주당에서 요청을 받긴 했다. 하지만 본인이 판단해 합류하지 않았다. 아내가 안철수 캠프 대변인이지만 남편은 문 후보와도 가깝다. 부부는 각자 알아서 하는 거다. 내가 ‘한 사람은 가정을 지켜야죠’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농담이 와전된 거다. 기자들이 남편 일을 묻길래 ‘각자의 일은 각자 판단하고 존중해준다. 그런데 집은 누가 보나’라고 농담했다. 가정은 같이 지키는 거다. ‘누군가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건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막는 편견이다.”

-문 후보와 잘 아나.
“존경하는 민변 선배다. 문 후보는 강직하고, 진솔하고, 소탈하고, 깨끗한 분이다.”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이 주어질까.
“주위에서 ‘중매’ 역할을 거론하는데 두 후보가 정책 경쟁을 잘해서 국민이 ‘누굴 선택할지 모르겠다’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상황부터 돼야 한다. 그러면 누가 나서지 않아도 단일화 방법과 형식에서 모두 답이 나올 거다. ‘부부가 단일화에 도움 되겠다’고 농담하는 사람도 있던데 정치가 그런 식이어선 안 된다.”

-야권 후보단일화는 어떻게 되나.
“단일화 자체가 목적이 되면 부작용이 생긴다. 안 후보가 약속한 혼탁한 네거티브 없는 선거부터 해야 한다. 안 후보의 출마 선언 전에도 권력이 동원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주민등록정보, 부동산 취득 경위 등이 나왔다. 그런 사찰 없이 정책 경쟁하고 후보 지향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단일화가 논의돼야 국민이 납득한다. 자꾸 단일화를 말하면 야합의 정치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선거를 하겠다는 안 후보의 진심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없다. 정치공학적인 야권 단일화론이나 제3 정당 논의는 안 후보의 진심이 소통되는 걸 어렵게 하는 논리다.”

-안 후보가 단일화 조건으로 말한 정치권 혁신과 국민 동의란 뭔가.
“‘정치 쇄신이 국민의 요청이니 깨끗한 정치를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하면서 다른 후보도 그러길 요청한 거다. 문재인·박근혜 후보가 정치 선배인데 안 후보가 ‘이런 게 정치 쇄신이다’라고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국민이 판단하는 거다.”

-단일화 여부를 밝히는 시점은.
“선거가 80여 일 남았다. 한국에선 조선왕조 실록사를 한 권 쓸 정도로 많은 사건이 터지는 기간이다. 출마 선언 후 많은 일이 있었다. 기간은 충분하다.”

-일부 무당파 지지층은 문 후보와의 단일화를 반대한다. 제3 후보의 길도 가능한가.
“무당파 지지층은 기존 정당 정치, 분열과 증오의 정치에 염증을 느낀다. 안 후보는 정당 정치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각 당이 쇄신하면 국민들이 정당을 지지하게 되지 않겠나. 그러면 정당·단일화 문제가 다 해결된다.”

-왜 창당 않느냐는 비판도 있다.
“‘정당은 안 만든다’는 그런 답은 안 하기로 했다.”

-안 후보가 25일 “강을 건넜고, 건너온 다리를 불살라 버렸다”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인가.
“단일화에 대해 답변한 게 아니고 정치 혁신 의지, 결기를 표현한 거다. 단일화를 거부한다든가 어느 시점에 단일화를 꼭 하겠다는 메시지가 아니다. 안 후보는 권력의지란 표현을 싫어한다. 공적 의지란 표현을 쓴다. 자신의 삶을 사회의 공적인 이익을 위해 헌신하려는 공적 의지가 굉장히 강한 분이다.”

-구체적인 공약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데.
“출마 선언 후 바로 캠프를 구성하고 정책 네트워크를 일주일 안에 내놓았다. 추석 이후 국민이 원하는 정치의 모습을 발표한다. 후보는 정책과 비전을 이미 책에서 밝혔고, 국민과 소통해 세부 공약을 완성할 거다. 후보가 좋아하는 게 ‘정중하게 예의 갖춰 말씀드리겠습니다’란 표현이다. 공약 발표도 예의를 갖춰서 할 거다.”

-전문가 그룹의 규모는.
“계속 불어나고 있다. 수평적 네트워크에서 하고 싶은 사람 다 한다. 개방성, 유연성이 특징이다.”

-민주당 출신이 더 합류하나.
“박선숙 전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온 것에 ‘민주당원이 많이 가면 후보단일화에 도움 되겠네’란 말이 있는데 아니다. 민주당원들은 누구를 지지할지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거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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