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다리를 다친 의사, 환자의 마음 알겠더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올리버 색스 지음
김승욱 옮김, 알마
292쪽, 1만5000원

투병일지다. 노르웨이에서 산행을 하다가 황소의 공격을 피하던 중 발을 헛디뎌 무릎수술을 받았고, 수술 끝에 다리의 신경을 잃었다가 마침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꼼꼼히 기록했다.

 한데 여느 병상기록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 우선 지은이(환자)가 의사다. 의사로서 체험한 신경심리학적 현상에 대한 관찰, 환자로서 바깥세상으로 돌아갔을 때의 느낌, 의사와 환자간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담았다. 게다가 평범한 의사가 아니라 환자들의 사연이나 두뇌작용에 관련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해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불리던 이의 ‘작품’이다. 그래서 책은 감동적인 투병일기라기보다 유려한 과학교양서로 읽힌다. 지은이는 부상 직후 ‘전문가다운 태도’를 보인다.

 “아주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네갈래근 힘줄이 완전히 파열됐어요. 근육은 마비가 와서 이완돼 있고, 십중팔구 신경손상도 예상됩니다.” 의식을 잃었다가 회복된 후 이처럼 의연한 태도를 보이며 자가진단까지 한다. 그리고는 못 쓰게 된 다리를 끌고 8시간에 걸쳐 마을로 내려와 구조를 요청한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몸을 일으켜서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런던에서 수술을 받은 후 다리감각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평범한 환자로 돌아간다.

 “전에 신경심리학적 영역을 탐험할 때 도움이 되었던 인지능력, 지적인 능력, 상상력이 아무런 쓸모도 없는 오지에 들어선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커다란 공포였다. 평소에 휘두르던 모든 능력을 포기해야 했으니까.”

 깁스를 풀고 나니 ‘그 자리’에 있기는 하지만 다시는 다리를 쓸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지은이는 예술과 종교에서 위안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마침내 물리치료 등의 도움으로 다리를 ‘찾는다’. “나도 모르게 다리에 지극한 애정을 느끼며 깁스를 어루만졌다. 다리는 집으로, 내게 돌아왔다. 다리가 얼마나 반가운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단순히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자유의 전주곡 격인 ‘동물적 자유’를 맛보는 과정은 절망을 향해 갔다가 돌아온 영혼의 여행이었다. 다시 정리해야겠다. 너무나 인간적이고, 그래서 감동적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