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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 풍미한 '고수'들의 기행문

중앙일보

입력

자, 이번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수' 들에게서 기행문이란 어떤 것인지 한수 배워봄은 어떨지.

먼저 『헤르만 헤세의 인도여행』 (푸른숲) . 1911년 서른 넷의 젊은 헤세가 어린 시절부터 동경의 대상이었던 인도를 둘러본 후 쓴 글이다.

실제 그가 여행한 곳은 당시는 인도였지만 지금은 스리랑카로 불리는 실론섬과 동남아시아 지역. 책 제목의 '인도' 는 '동양' 의 상징인 셈이다. 아무튼 그곳에서 헤세는 동양적 정신과 정취에 흠뻑 빠져들면서도, 같은 서구인들의 문화파괴에 대해 반성한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이자 선구적인 페미니스트 시몬 드 보부아르의 『미국여행기』 (열림원) 는 2차 대전 후 노쇠한 유럽, 그 구세계 지성의 눈을 통해 재즈와 찰리 채플린, 헤밍웨이와 매카시즘이 등장하는 젊은 미국을 생생히 느껴볼 수 있는 책이다.

1947년 넉달간의 여행 기록. 그는 아스팔트 대로를 메우고 있는 자동차 행렬과 물건이 넘쳐나는 대형상점에 감탄하지만 인종차별주의와 청교도적 도덕주의, 그리고 말로만 평등을 외치는 미국 여성들은 날카롭게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전설적 혁명가의 젊은 혈기와 순수함을 찾아볼 수 있는 『체 게바라의 라틴 여행 일기』 (이후) . 1951년 12월 가죽점퍼와 조종사용 선글라스 차림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스물 세살 의학도 게바라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가난 속에 착취당하는 인디오들의 모습들을 보며 혁명적 사고를 간간히 내비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축구.낚시.포도주 등에 대해 들떠 이야기하는 유쾌한 청년 게바라가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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