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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용산 개발, 출구 없나 … 집안싸움에 돈줄까지 꽉 막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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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자금 사정으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대상지인 서울 용산구 철도정비창 부지의 기반공사가 이달 초 중단됐다. 이곳에서는 내년 상반기 본격적인 착공에 앞서 토지오염정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박종근 기자]

사업비가 31조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인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집안싸움으로 멈춰섰다. 지난해 10월 시작한 용산국제업무지구 기반공사(토지오염정화 공사)가 11개월 만인 이달 3일 전면 중단됐다. 이 개발사업의 추진 주체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이하 드림허브)의 1, 2대 주주인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롯데관광개발의 갈등으로 자금 집행이 안 되자 시공업체가 공사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열렸던 이사회에서는 회의 도중 논쟁을 하다 코레일 측 이사 3인이 회의장을 나가 무산되는 일도 벌어졌다. 드림허브를 대신해 사업을 진행하는 용산역세권개발(AMC)의 주관사인 롯데관광개발의 지분(45.1%)을 코레일이 인수하는 안건이 문제였다. 코레일은 롯데관광개발이 주도하는 AMC가 추진하는 현재의 개발계획을 중단하고 서부이촌동을 나중에 개발하는 ‘단계적 개발’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사실상 롯데관광개발을 쫓아내려는 의도다.

 이달 초부터 두 회사는 드림허브에 참여하는 30개 출자사에 잇따라 공문을 보내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코레일은 “자금력이 부족한 롯데관광개발이 주도하는 AMC로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롯데관광개발은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 진행하는 현재의 사업계획을 코레일이 정당한 절차 없이 무시하고 사업 일정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AMC는 출범 당시 마련한 1조원의 자본금을 거의 다 소진하고 현재 400여억원만 남은 상태다. 두 회사가 갈등을 일으키는 사이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AMC에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조달한 땅값과 각종 운영비 등으로 하루 17억원씩 손실이 쌓이고 있다. 드림허브 관계자는 “AMC 운영자금이 고갈돼 사실상 파산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 단계개발 vs 통합개발

 두 회사가 이견을 보이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 우선 ‘개발방식’. 코레일은 서부이촌동을 제외하고 사업성이 있는 것부터 먼저 개발하자는 ‘단계개발론’을 주장한다. 반면에 롯데관광개발은 지난해 드림허브 주주총회에서 결정한 대로 철도기지창과 서부이촌동을 동시에 개발하자는 ‘통합개발론’을 고수하고 있다. 코레일 측 송득범 개발사업본부장은 “연면적이 105만㎡인 상업시설을 한꺼번에 내놓으면 공급 과잉으로 미분양이 되는 것은 물론 팔아도 제값을 받지 못한다”며 “지금 계획으로는 100% 실패할 것이 뻔해 단계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에 롯데관광개발은 단계적 개발은 전혀 현실성 없는 주장이라고 반대한다. 단계적 개발을 하면 서부이촌동 보상비 지급 시기가 사업계획 대비 3년 이상 지연되므로 주민들에게 사업 동의서를 다시 받아야 하는데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서부이촌동 11개 주민모임 김찬 총무는 “단계적 개발에 따라 2017년 보상한다면 대출을 많이 받아 매달 수백만원씩 이자를 내고 있는 주민들은 모두 죽으라는 이야기”라며 “단계적 개발에 동의하는 주민은 없을 것”이라며 코레일 측을 압박하고 있다.

 롯데관광개발 관계자는 “단계적 개발을 추진하려면 서울시에 실시계획인가를 다시 받아야 하고, 기존 설계도 바꿔야 해 사업 일정이 2년 이상 지연되고 토지분납이자 등 사업비가 2조원 이상 늘어나 사업수지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자금조달 방식·사업주도권 줄다리기

 ‘자금조달 방식’을 둘러싸고도 서로 맞서고 있다. 코레일 측은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어 안정적인 자금 마련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기존 드림허브 출자사들의 증자, 제3차 출자를 통한 공모 등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롯데관광개발 측은 코레일 측 증자 방침은 현재 출자사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리한 주장이라고 맞선다. 기존 사업협약대로 2500억원 CB(전환사채) 발행과 향후 분양 등을 통해 발생하는 5조6000억원의 매출채권을 유동화하면 된다고 보고 있다.

 공기업인 코레일이 AMC 최대주주가 돼 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느냐는 부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코레일 측은 롯데관광개발의 지분 45.1%를 넘겨받아 기존 코레일 지분(29.9%)과 합해 모두 75%의 지분을 가진 AMC의 새로운 대주주로서 사실상 사업을 주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롯데관광개발은 2010년 10월 삼성물산이 AMC 지분 45.1%를 포기했을 때 이를 넘겨받아 지금까지 최대주주로서 사업을 주도해 왔다. 당시 롯데관광개발과 코레일과 맺은 사업 합의서엔 ‘향후 외부 투자자 등에게 양도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어 코레일이 이를 직접 양도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두 회사는 사업 주도권 부분과 관련해 향후 소송까지 대비한 법률 문제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롯데관광이 주도하는 용산역세권개발 측은 김앤장에 코레일이 AMC를 인수할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 김앤장은 법률문제 검토 보고서에서 “코레일이 AMC의 최대주주이면서 드림허브의 최대주주가 되면 지배적 위치가 생기므로 공정거래법에 따라 드림허브도 계열사에 편입될 수 있다”며 “공기업 계열사로 편입되면 향후 여신한도 규제, 채무보증 제한 등 각종 규제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롯데관광 측은 이와 관련해 “공기업 계열사가 되면 국가계약법 적용에 따라 사업 일정이 지연되는 등 민간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해쳐 사업을 계획대로 끌고 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코레일은 법무법인 바른에 김앤장의 해석이 타당한지 자문했다. 바른은 “AMC가 계열사로 편입되는 것은 맞지만 법률상 공공기관 요건을 충족해도 반드시 공공기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코레일 측은 “코레일이 추진하면 대외 신인도가 높아지고 현실성 있는 계획을 추진하기 때문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코레일이 AMC 대주주가 된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 단계적 개발과 증자 등의 방식으로 사업계획을 바꿀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 AMC는 드림허브 이사회에서 결정한 사안을 집행하는 기관일 뿐 AMC가 새로운 계획을 추진하는 것은 무리하다는 게 대부분의 출자사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코레일이 AMC 대주주가 된다고 해도 기존 드림허브 이사 수가 변하지 않아 사업계획을 쉽게 바꾸긴 어렵다는 것.

 한 출자사 관계자는 “코레일은 이미 현재 사업이 안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CB 발행을 반대하고, 그와 동시에 납입하기로 한 랜드마크 빌딩 선매입 계약금 4160억원을 집행하지 않아 AMC의 자금줄을 막아놓은 상태”라며 “사업 추진 의지가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사업 좌초 시 거센 후폭풍

 전문가들은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좌초할 경우 사회·경제적 후폭풍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사업이 좌초하면 30개 출자사들이 낸 1조원대의 자본금이 사라지고, 코레일은 땅값을 다 못 받아 고속철도 건설 부채(4조5000억원)를 갚고 적자 기업에서 탈피할 기회를 잃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만이 문제가 아니다. 서울 서부이촌동 주민 2200여 가구는 2007년부터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고, 사업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수년째 반목하고 있다.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수조원대에 이른다는 것이다. 또 용산 집값·땅값은 2007년 이 사업 시작 이후 급등했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용산 부동산값 급락은 물론 국제업무지구 주변 재개발 사업 등도 줄줄이 멈춰 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상태로 이 사업 전망은 밝지 않다. 사공(출자사)이 너무 많은 데다 무엇보다 부동산 시장이 위축돼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도 결국은 오피스·아파트를 지어 팔아야 수익이 남는 구조인데, 현재로서는 분양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얘기다. 한 대형 건설업체 임원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생긴 문제여서 이번 사태가 해결되더라도 갑자기 사업이 잘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부나 서울시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시는 SH공사, 정부는 코레일을 통해 사실상 이 사업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출자사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견해차를 좁혀가는 것”이라며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쉽지 않으므로 정부·서울시·출자사가 제3의 위원회 등을 만들어 돌파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일한·황정일 기자

◆용산국제업무지구=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일대 용산철도정비창 부지(44만2000㎡)와 서부이촌동 지역(12만4000㎡)을 합친 총 56만6000㎡ 부지에 대규모 복합단지를 건설하는 사업. 용산을 국제업무기능을 갖춘 서울의 부도심으로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2016년 말까지 111층 높이의 랜드마크빌딩을 포함해 쇼핑몰·호텔·백화점·아파트 등 67개 빌딩을 지을 계획이다. 추정 사업비가 31조원으로 국내 사상 최대 규모의 개발사업이다. 82조원의 경제유발 효과와 20만 명이 넘는 고용창출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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