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원전 사무실에서 ‘히로뽕 투약’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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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고리 원자력본부 직원들이 마약인 히로뽕을 투약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투약은 사무실에서도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올 들어 정전사고 은폐와 납품비리로 물의를 빚었던 고리 원전의 근무기강 해이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부산지검 강력부는 고리 원전 재난안전팀 소속 김모씨 등 두 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어제 밝혔다. 김씨 등은 한 폭력조직 행동대장으로부터 히로뽕을 입수해 수차례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중 한 명은 근무시간에 재난안전팀 사무실에서 투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사람은 원전 시설에서 일어나는 화재 등에 대처하기 위해 고리 원전 측이 별도로 운영하는 소방대 소속이다. 원전 관계자는 “해당 직원들의 업무가 화재 진압 등에 국한돼 있어 발전설비 운영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직원들의 히로뽕 투약을 개인 차원의 문제로 넘기기는 어렵다. 그간 고리 원전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거듭돼 왔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발전기 고장으로 전력공급이 중단됐는데도 이를 은폐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7월에는 납품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간부들이 무더기로 구속됐다. 정전·은폐의 책임을 지고 한수원 사장이 사퇴했는가 하면 납품 비리 수사 때는 강도 높은 경영 쇄신을 다짐하는 임직원 결의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번 사건도 그러한 관리 부실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본다. 원전 사고는 자칫 대규모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철저한 준비·대응 태세를 갖춰야 할 원전 재난관리 직원이 사무실에서 환각·흥분 효과가 있는 히로뽕을 투약했다는 건 단순한 ‘안전불감증’ 수준을 넘어선다. 풀어질 대로 풀어진 내부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약물검사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것만으론 대책이 될 수 없다. 근무 자세 전반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그에 따른 문책이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 없이 원전에 대한 주민 신뢰를 확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