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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영화찾기]행복한 중독 '오!그레이스'

중앙일보

입력

영화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선댄스영화제를 짚고 넘어가자. 1978년 미국 유타에서 U.S 필름 페스티벌로 시작된 영화제는 84년 로버트 레드포드가 설립한 선댄스제단과 손을 잡으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권위의 독립영화축제로 거듭난다.


이후 영화제는 주로 할리우드 변방의 저예산 영화들을 소개하며 번득이는 감각을 지닌 신예 감독의 등용문이 됐다. '펄프 픽션'의 쿠엔틴 타란티노, '섹스, 거짓말, 비디오테이프'의 스티븐 소더버그, '유주얼 서스펙트'의 브라이언 싱어 등이 대표적인 '선댄스 키드'다.

90년대 말부터 '순수성' 시비가 일기도 했지만, 어찌 됐건 올해로 17회째를 맞은 선댄스영화제는 매년 1월 전세계 영화팬의 시선을 모으며 새로운 '신데렐라'를 탄생시키고 있다.

나이젤 콜 감독의 '오!그레이스'는 2000년 선댄스와 뮌헨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영화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의 자살에 엄청난 빚까지 떠맡은 한 중년 여성의 인생 재기전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다.

'오!그레이스'의 가장 큰 매력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끊임 없이 피어 오르는 '행복'과 '웃음'이다. 그리고 그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는 '대마초'다. 워낙 대마초를 포함한 마약은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가는 절대악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쉽게 납득이 안 가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렇다.

화초 키우기와 오후의 티 파티가 취미인, 범법행위라곤 한 번도 한적이 없는 순진한 '아줌마' 그레이스가 아름다운 집을 남의 손에 넘기지 않기 위해 택한 방법은 대마 재배. 단기간에 목돈을 쥘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그레이스는 온실을 가득 메우며 무럭무럭 자라는 대마를 통해 삶의 희망과 행복을 발견한다. 물론 그녀의 온실은 촌구석이라 대마를 구하기 힘들었던 동네 청년들에게도 행복의 산실이다.

뿐만 아니다. 대마의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밤새 온실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조명은 마을사람들의 밤 지루함을 덜어주는 행복한 볼거리다.

그리고 대마 재배가 결실을 보려는 순간 그레이스는 마을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 대마를 모두 불지르고, 온 마을을 질식 시킬 것 같은 연기에 취한 사람들은 남녀노소, 직업을 불문하고 한 데 어우러져 '천국'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여기서 끝난다면 그레이스는 다시 빚더미에 눌려 불행한 말년을 맞이해야 할 것이지만 영화는 만화적인 반전과 함께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행복 코드 역시 대마다.

배경이 된 영국 콘월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은 보는 화면에 행복함을 더하는 또 하나의 요소. 96년 '비밀과 거짓말'로 골든 글로브와 칸느 여우주연상 등을 휩쓸었던 그레이스역의 브렌다 블레신과 다른 출연진들의 깔끔한 연기도 일품이다. 6월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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