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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前 롯데 '임수혁 선수' 취재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6일 정오 서울 강동 성심병원 1123호실. 1년 넘게 식물인간으로 누워만 있는 전 롯데 자이언츠 프로야구선수 임수혁(33)은 눈만 깜빡이며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금새라도 벌떡 일어날 것 같지만 그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 사고, 그리고 현재

작년 4월 18일 LG와의 경기도중 2루에서 갑자기 쓰러진 뒤 지금까지 의식불명 상태로 생명을 유지해오고 있는 임수혁 선수는 1여년이 지난 지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 가족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임수혁의 정확한 병명은 심장쇼크로 인한 뇌 질환으로 현재 강동 성심병원에서 산소 호흡기를 단 채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로 생명을 연장해 나가고 있다. 다만 초기에 보였던 호흡곤란 증세는 거의 사라졌고 맥박 혈압 호흡 등 신체 기능은 정상이지만 의식을 관장하는 뇌 기능이 손상돼 의식이 깨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고비를 넘겼다고 판단한 병원측에서는 임수혁을 중환자실(심장외과)에서 일반병실(신경과)로 옮겼다.

◇ 임수혁과 야구

고려대에서 포수로 있다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되어 주로 대타로 뛰었던 임수혁 선수는 주로 9회말 찬스 등에 대타로 나오면서 심한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왔다고 한다. 주심의 판정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수 천명의 관중이 열광하는 가운데,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타석에서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임수혁 선수는 특히 그 정도가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임 선수의 어머니는 "그 정도 심리적 부담은 운동선수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심장질환에 의한 쇼크에 대해 부정적인 뜻을 나타냈다. 아직 정확한 발병원인을 알지 못하는 병원측은 현대 의학으로서는 그저 지켜보고 있는 상황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 임수혁과 가족

대학 때 소개팅으로 만난 부인과 연예결혼을 한 뒤 아들과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부인은 동갑내기로 미술을 전공한 재원이고 올해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임수혁은 아들의 입학식에 갈 수 없었다.

임수혁은 롯데 입단 당시 김용희 감독(고려대 선배)의 트레프트 지명에 의해 포수로 선수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롯데에는 강성우(現 SK 와이번스)라는 안방마님이 자리를 잡고 있어 임수혁은 수비형 포수가 아닌 공격형 대타 임무를 맡았다.

◇ 임수혁과 롯데 자이언츠

롯데구단은 임수혁을 임의 탈퇴선수로 풀었다. 선수생활을 할 수 없는 선수를 무한으로 팀의 명단에 포함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상으로 임선수를 돕고 있다.

우선 그의 병원비를 전면 지원해주고 있고 음으로 양으로 지켜봐 주고 있다. 임씨의 보호자에 따르면 1년이 경과한 지금까지 롯데의 지원은 한결같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편 임수혁의 동료이자 '선수협 간사'인 마해영(現 삼성 라이온스)을 중심으로 동료선수들도 돕고 있는데 마해영은 임수혁의 치료비 보조를 위해 7개 구단 주장들을 만나 사전 준비 작업을 해왔었다. 비록 지금 삼성으로 트레이드가 되어 롯데 선수들과 스케줄이 다르지만 임을 가장 챙기는 선수가 바로 마해영이라고 한다. 진한 동료애가 있어 더욱 아름다운 프로야구다.

◇ 프로선수 관리

97년 한국시리즈 5차전이 열린 잠실구장. 해태 타이거즈 고졸 2년차 우완 투수인 김상진(당시 20세)은 혼신의 역투로 LG 타선을 막아냈다. 마침내 마지막 타자 유지현을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낸 김상진은 환호하면서 두 팔을 번쩍 들고 포수 최해식과 포옹했다.

김상진은 종합성적 4승1패로 팀에 우승을 안기면서 차세대 에이스로 자리잡았으나 이듬해 위암 판정을 받게 되었다. 다음 시즌 김상진은 10승투수를 예상했으나 6승에 그쳤다. 급기야 한국시리즈 완투승을 거두었던 잠실구장에서 피칭 도중 목이 삐끗하면서 자진 강판한 게 마운드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단순한 부상으로 짐작한 김상진은 시즌이 끝나고 친구들과 어울리던 중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의 목뼈에 금이 간 것도 암세포가 전신으로 퍼진 데서 비롯됐던 것을 몰랐던 김상진이었다. 그는 정밀검사 결과 이미 위암 말기였다. 그리고 위암 판정을 받은 지 8개월 만인 99년 6월 10일 눈을 감았다.

김상진의 죽음과 임수혁의 투병,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선수들의 이런저런 부상은 다시 한 번 프로구단 선수들에 대한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97년 당시 해태는 선수들의 종합검진을 실시했지만 자비를 들여야 하는 자율 검진이었고 롯데도 마찬가지였다.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에게는 종합검진이 별것 아니지만 낮은 연봉의 선수들은 경제적인 부담감 때문에 이런 검진을 지나쳐버리기 십상이라고 한다. '구단이 의무적인 건강관리 시스템을 마련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취재를 마치며

단체경기에서 투지에 불타는 개개인이 팀 전체에 끼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올해 미국 NBA 필라델피아 76's 선수들은 래리 브라운 감독이 중병에 걸려 작전을 지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더욱 의기투합해 '승률1위'라는 놀라운 업적을 일궈내며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기도 했다. 국내는 또 어떠한가?

전자슈터로 명성을 떨친 김현준 코치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지자 그의 업적을 기리듯 삼성농구단은 약체라는 평가속에 투혼을 불살라 끝내 우승을 차치하고 말았다. 우승소감을 묻는 선수들마다 '김현준 코치를 생각하며 뛰었다'는 투지는, 힘과 기술의 조화라는 천편일률적인 스포츠 방정식을 초월한 강렬한 카타르시스로 관중과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매 경기에 임할 때 마다 임수혁의 백 넘버 20번을 모자에 새기고 경기를 한다. 그가 언제 숨을 거둘지는 모르지만 그를 위해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는 무언의 의지라고 보여진다. 비록 지금 롯데가 하위권을 달리고 있지만 롯데가 만약 우승한다면 그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값어치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임수혁의 포효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임수혁 선수 프로필
등번호 : 20
포지션 : 포수
출생 : 69년 6월 17일, 서울
신체 : 185 cm, 85 Kg
학력 : 서울 봉천국-강남중-서울고-고려대
투타 : 우투우타
입단연도 : 94년 롯데
현주소 : 부산시 동래구 사직2동 우성맨션 311호
가족사항 : 부인 김영주씨와의 사이에 1남 1녀
주요경력 : 94시즌 29경기 출장 40타수 10안타 타율 2할5푼 홈런10, 7타점
취미 : 영화감상, 낚시
주량 : 소주 1병
성격 : 대범하고 사교적임
친한 야구선수 : LG 양준혁
별명 : 꿈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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