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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유신 과오 인정한 박근혜 … ‘역사 공과론’ 정착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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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박정희 시대 재인식’은 “국민 이기는 정치 없다”는 엄중한 진실을 확인시켜 준다. 박 후보는 어제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에 대해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본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발표했다. 민주당뿐 아니라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올 만큼 그동안 박 후보의 역사관에 대해선 국민적 문제제기가 빗발쳤다.

 과거 박 후보의 역사관은 아버지의 딸로서는 몰라도,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문제가 많았다. 1961년의 5·16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고, 72년의 유신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고 하더니, 급기야 75년의 인혁당 재건위와 관련해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주장해 국민을 혼란 속에 빠뜨렸다. 5·16은 쿠데타이고, 유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유린했으며, 인혁당 재건위 1차 판결이 무효라는 건 누구의 눈에도 자명한 사실이다.

 박 후보가 양자 지지율 대결에서 안철수 후보에게 역전당하고, 문재인 후보에게 바짝 쫓기는 상황이 되어서야 역사 과오를 인정한 건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 해도 박 후보의 역사관 수정은 국민 다수의 의구심을 상당히 해소할 정도로 분명했다. 주어를 감추거나 제3자적 시각으로 언급하거나 두루뭉수리 사과만 했던 모호함에서 벗어나, 1인칭으로 ‘헌법가치 훼손’ ‘정치발전 지연’같이 사과의 이유를 적시한 명쾌함으로 역사인식이 진전된 것이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아주 힘든 일이었을 텐데 아주 참 잘했다. 국민통합으로 가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호응하고,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정말 필요한 일을 했다.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한 것은 2012년 대선에 기대감을 갖게 하는 반응들이다. 민주당 일각에선 국회 차원에서 유신헌법 무효화 결의안 같은 것을 주장하고 있는 모양인데, 역사인식 문제는 역사인식의 수정으로 끝내야 한다. 이 문제를 더 이상 확대하면 또 다른 대선 전략이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2012년 대선은 유례없는 정당정치 불신과 후보의 지각 등장, 역사인식 문제 등에 가로막혀 정책·가치·세력·인물에 대한 활발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 후보의 역사 수정을 계기로 대선은 생동감 있고 미래지향적인 국가경영능력을 경쟁하는 장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후보들은 ‘모든 역사엔 공(功)과 과(過)가 있다’는 상식적인 역사관에 투철해져야 한다. 중국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피해자인 덩샤오핑이 1978년 집권한 뒤 “마오 주석의 공은 7이요, 과는 3이다”라고 한 건 반대파를 끌어안아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의 미래를 추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후보가 2012년 대선 경쟁에서 증오와 분열의 시대를 마감하고 관용과 통합의 시대를 열었다는 공동 평가를 받는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역사의 보람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