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증시루머 '소근소근' 시대 끝

중앙일보

입력

'왕가뭄으로 양수기 제조업체 S사의 매출이 늘 것이다' .

지난 11일 오전 데이 트레이더 金모(33)씨는 인스턴트 메신저를 통해 이 루머를 접하자마자 S사 주식을 사들였다.

2~3시간도 안돼 주가는 12%까지 뛰었다. 한숨 돌린 金씨는 이 회사 기업설명(IR)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회사는 양수기를 만들지 않는데요. 거짓 소문이에요. " 가슴이 뜨끔해진 金씨는 즉각 주식을 팔고 나왔다.

인터넷과 사이버 증권거래가 확산되면서 증시 루머의 생산.유통 방식이 바뀌고 있다. 루머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도 초(秒)를 다툰다.

◇ 루머도 세대교체=예전에는 기업 탐방을 다녀온 증권사 직원들끼리 '정보회의' 를 통해 루머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증권사는 오전 8시30분쯤 본사가 취합한 증시 루머를 5분 동안 컴퓨터 모니터에 띄웠다가 지운다.

증시 루머에 대한 검찰 단속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루머는 '인터넷 삐삐' 로 불리는 메신저를 타고 순식간에 증시에 퍼진다.

루머를 접한 단타 매매자들은 바로 주식을 매입하고, 자신의 주가를 띄우기 위해 즉시 메신저를 통해 루머를 전파한다. 지난해 등장한 메신저의 사용자는 벌써 1천3백만명을 넘어섰다.

피데스증권 정동희 투자전략실장은 "루머의 전달수단이던 문서.전화 등은 이미 효용가치를 잃었다" 며 "요즘은 '정보회의' 에 나가지 않고 인터넷을 뒤진다" 고 말했다.

◇ 진땀 빼는 기업들=루머의 생산.유통이 손쉬워져 역정보의 피해도 많다. 증권업협회 관계자는 "최근 A증권사가 외국에 인수된다는 소문은 작전세력이 흘린 게 분명하다" 고 말했다.

하루 동안 반짝 주가가 상승하며 대량 거래를 일으킨 뒤 주가가 곤두박질했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악성 루머를 차단하기 위해 진땀을 흘린다.

코스닥의 휴맥스는 매주 기업설명회를 4~5차례 열고, 홈페이지 게시판에 질의.응답 코너를 운영한다.

R사는 증권사이트의 루머를 감시하는 전담 직원을 두고 피해가 예상되는 루머에는 사이트 관리자에게 삭제를 요청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진짜 알짜배기 정보는 기업이 공식적으로 발표하거나 언론에 보도되기 전의 뉴스" 라고 말했다. 지난해 진승현.정현준 사건은 일주일 전부터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 은밀히 루머가 나돌았다.

◇ 루머도 투자다=이런 알짜정보를 찾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투자자도 늘고 있다.

한 증권전문 사이트는 한달에 6만원씩 받고 실시간으로 메신저를 통해 투자정보를 보내주고 있다.

외국의 경우 증시 루머를 아예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시세 조작을 위해 퍼뜨리는 황당무계한 루머를 막고 있다.

K증권 崔모(38)지점장은 "투자자가 루머에만 신경을 쓰다가는 정석 투자를 하기 어렵다" 며 "정보수집 전문업체에 돈을 내며 받는 자료는 투자에 참고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지적했다.

하재식.김용석 기자 angel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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