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외자유치 "한고비 넘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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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가 해외주식예탁증서(GDR) 발행을 통해 12억4천9백98만달러(약 1조6천1백44억원)의 외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에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한 고비는 넘겼다" 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GDR 발행 성공은 채권 금융기관의 하이닉스 회생안을 시장이 수용했다는 의미" 라고 평가했다.

외자유치 과정을 애태우며 지켜본 채권단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환영했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실무자는 "1조8천억원 이상의 외자만 유치되면 전환사채(CB)인수 등 당초 채권단이 약속한 하이닉스 지원계획을 이달 중 실행에 옮길 수 있다" 고 말했다.

하이닉스뿐만 아니라 은행들도 힘든 고비를 하나 넘긴 셈이다. 더구나 12억5천만달러의 자금이 들어오면 하반기 환율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유동성 위기는 해소=GDR 발행 성공으로 유동성 문제는 해결됐다고 하이닉스는 강조했다.

올해 갚아야 할 빚 5조6천7백억원 중 이미 3조5천억원을 회사채 차환(借換)발행과 협조융자(신디케이트론)로 막아 놓았고, 자산매각과 영업이익으로 2조원은 조달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GDR 발행으로 여유자금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존채무는 만기를 연장하거나 CB 1조원을 발행해 갚고, 새 돈(외자)은 설비투자와 운전자금에 사용한다는 것이 하이닉스의 자구계획이다.

당초 10억달러의 GDR와 3억7천만달러의 하이일드채권(고수익 채권)을 발행해 1조8천억원의 외자를 유치할 계획이었는데 로드쇼를 시작하기 직전 GDR 8억달러, 하이일드채권 3억5천만달러 등 1조5천억원으로 줄였다가 막판에 GDR만 12억5천만달러 발행하는 것으로 바꿨다.

샐러먼스미스바니(SSB)증권이 15%를 추가 발행할 수 있는 옵션이 있어 최종 GDR 발행규모는 14억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홍콩.유럽에서 투자자 유치를 위한 로드쇼를 할 때는 별 반응이 없었는데 로드쇼 막바지에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고 말했다.

그는 "미국 반도체 기업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외에도 훌륭한 투자자 몇 군데가 GDR를 인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덧붙였다.

◇ 남아 있는 문제=전문가들은 외자유치는 하이닉스 회생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김경림 외환은행장은 "반도체 경기가 지난 1분기 정도만 유지된다면 하이닉스는 충분히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반도체 가격은 1분기보다 40% 정도 떨어졌으며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반도체 관련 애널리스트들은 3분기 이후 회복되리란 올 초 전망을 최근 뒤집고, 올해 안에 반도체 경기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데이타퀘스트 코리아의 이희찬 수석연구위원은 "내년 하반기부터는 확실히 회복세를 탈 것이며, 올해 말이나 내년 상반기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 고 말했다.

결국 반도체 경기의 회복을 목타게 기다려야 하는 ''천수답'' 경영을 벗기 어려울 전망이다.

하이닉스측은 반도체 가격 폭락으로 재무구조가 나빠졌지만 앞으로 반도체 경기가 현 수준만 유지하면 외자유치로 올해는 견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양선희.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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