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컬렉션] '마이 퍼니 밸런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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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재즈 에세이』(열림원) 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아티스트는 재즈 트럼페티스트 겸 보컬리스트 쳇 베이커(1929~88) 다.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가슴의 상처가 있고 내면의 풍경이 있다. 그는 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공기처럼 빨아들이고 다시 밖으로 내뿜는다….

그의 연주는 시원스럽고 밝은 표층 아래로 침잠한 고독의 여운을 남긴다. 비브라토를 쓰지 않는 (트럼펫) 소리는 똑바로 공기를 찌르고,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미련없이 사라진다. 노래는 미처 노래가 되기도 전에, 우리들을 둘러싼 벽에 삼켜진다. "

쳇 베이커의 연주는 짙은 안개로 뒤덮인 도심의 야경과 함께 담배연기가 자욱한 와인 바에 홀로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떠올리게 한다.

잠 못 이루는 밤 홀로 방에 앉아 그가 담담한 어조로 들려주는 노래와 짧은 호흡과 무심코 툭툭 내뱉듯 탁트인 트럼펫 연주를 듣노라면 진한 그리움과 함께 젊은 날의 추억이 밀려온다.

쳇 베이커의 전성기는 퍼시픽 재즈 레이블에서 '게리 멀리건 쿼텟' 과 녹음한 1950년대다. 당시 미국 재즈계를 풍미했던 '쿨 재즈' 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의 히트곡을 타이틀로 내건 '마이 퍼니 밸런타인' (블루 노트) 은 퍼시픽 레이블로 냈던 음반 중 대표곡 14곡을 한 데 모은 앨범이다. '섬원 투 워치 오버 미' '문라잇 비컴스 유' '디스 이즈 올웨이스' '타임 애프터 타임' '문 러브' 등 로맨틱한 러브 송들로 빼곡하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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